[詩카페를 가다]시와 노래와 공연이 있는 곳, 인사동 '시가연'
[詩카페를 가다]시와 노래와 공연이 있는 곳, 인사동 '시가연'
  • 윤지원
  • 승인 2019.01.14 10: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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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국역 6번 출구로 나와 인사동길로 들어선다. 큰 길을 따라 쌈지길 방향으로 걷다보면 미호 갤러리가 보인다. 갤러리 옆엔 시가연이라는 작은 카페 겸 식당이 숨어있다. 입구에 있는 주간 행사 안내표를 보면 여기는 뭐하는 곳이지?’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낭송모임, 판소리와 가곡 공연, 가족극장, 통기타 정기모임, 이생진 시인의 낭송 등으로 시간표가 빼곡하다. 눈을 이끄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섬시인으로 유명한 이생진의 시 인사동이 검은 벽에 흰 글씨로 새겨져 있다.

 

식당이 있는 지하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부터 지루하지 않게 꾸며져 있다. 벽엔 그 동안의 시가연을 보여주는 기사나 사진, 시집 등이 붙어있다. 내려오면 식당 안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30평 규모의 식당은 의외로 알차다. 30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있고, 계단과 마주보는 곳엔 무대가 있다. 마이크며 스피커, 앰프, 프로젝트 빔까지 작지만 있을 건 다 있다.

 

 

시가연은 남편인 이춘우(위 사진)씨와 부인인 김영희씨가 함께 운영한다. 이춘우씨는 시낭독가이고, 김영희씨는 시인이다. 한마디로 시를 사랑하는 이들의 가게인 셈이다. 취재 당일 4시에 열리는 우리 가곡 부르기준비로 김영희 시인은 분주했다. 시낭독가로 활동하는 이춘우씨에게 시가연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시와 노래, 공연이 있는 곳"

 ▲시가연을 열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요?

시가연을 열기 전, 종각역 근처에서 가연(佳緣)’이라는 생맥주집을 운영했어요. 재개발을 하게 되면서 쫓겨나다시피 종각을 떠나게 됐죠. 그러다 여류화가가 운영하던 갤러리 자리에 시가연을 열게 됐어요. 저희는 가연을 찾던 손님들에게 친숙하면서도 새로운 이름을 생각하다가 원래 이름에 를 붙이고 새로운 의미를 담았어요. 시가연(詩歌演). 시와 노래와 연극이 있는 곳이라는 뜻이죠. 시인인 아내와 연관도 있었고, 저도 좋은 시를 발굴해서 낭송을 통해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거든요. 소박한 바람이 지금의 시가연을 만든 거죠.”

 

시가연이라는 이름은 그 자체로 아이덴티티다. 이름을 디딤돌 삼아 운영하다 보니 예술 단체들이 많이 찾아왔다. 그러나 지금까지 시가연을 운영해온 과정이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시가연은 2014419일 문을 열었다.  당시 세월호 참사로 개점식에 온 사람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이춘우씨는 세월호 피해자를 애도하기 위해 김선우 시인의 이 봄의 이름을 찾지 못하고 있다를 낭송하며 조용히 시가연의 시작을 알렸다. 운영 2년째에도 고비는 계속됐다. 메르스가 유행한 것이다. 이춘우씨는 계속되는 어려운 상황에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이 아닌가?’하는 고민도 했다. 그러나 3년째부터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됐다. 문화 행사를 도와주다보니 좋은 평이 이어졌고, 광고나 홍보 없이도 입소문을 탔다. 요즘엔 개점 5주년 행사도 생각중이라고 한다.

    

 

시가연을 만든 특별한 인연

 

 

시가연은 201410월에 윤동주 시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최초본을 전시한 것으로 언론의 조명을 받기도 했다. 인사동의 작은 카페가 이런 전시를 하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윤동주 시인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최초본은 어떻게 전시하게 됐나요?

“여기서 전시한 최초본은 출판사 정음사 최영해 대표님의 소장이었죠. 그의 장남인 최동식 고려대 화학과 명예교수께서 도움을 줬습니다. 최동식 교수님은 우연히 시가연을 들렀는데 저희가 시가연을 지키고 있는 모습을 좋게 봤는지 여러 가지 제안을 해주셨어요. ‘학림다방에 대한 신문기사를 가져와 이런걸 스크랩해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하는 건 어떻겠느냐는 말도 해주셨죠. 계단이나 가게 벽에 붙여진 기사가 그의 아이디어입니다. 그러다 특별한 제안을 해주셨어요. 그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표지 사진을 제게 보여주면서 전시까지도 흔쾌히 허락해줬어요.”

 

가게 입구 벽에 이생진 시인의 인사동이 벽에 쓰여 있고, 시인이 시가연에 와 주기적으로 낭송도 하시죠. 섬시인으로 유명한 이생진 선생과는 어떻게 알게 되었나요?

저는 시에 퍼포먼스를 얹은 시극도 했어요. 그게 바로 이생진 시인의 그리운 바다 성산포였죠. 이것을 인연으로 뵙게 되었어요. 이생진 시인은 인사동에서 시낭송을 계속 하셨는데 점점 그런 공간이 사라지자 시가연으로 옮겨 오신거죠. 이생진 시인의 인사동 사랑은 특별해요. 그는 인사동을 시인들의 섬이라고 해서 인사도라고 부르시죠.”

 

이춘우씨는 이후 시가연을 찾아준 많은 예술인이 있기에 시가연이 문화복합공간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고 고마움을 잊지 않았다.

 

 

포스트잇에 빼곡히 그린 미래

 그는 40년 동안 건축디자이너로 활동했다. 지금은 시가연을 운영하고 있지만 완전히 건축에서 손을 뗀 것은 아니라고 한다. 시와 관련된 건물을 만들고 싶다, 또 시가연을 좀 더 꾸미고 싶다고 소망을 말했다. “사람들이 말할 때 시를 짓는다, 건물을 짓는다라고 하잖아요. 이것이 시와 건축의 공통점이라고 생각해요. 아직까진 시를 짓는 것이 건축보다 어려워요.” 지금처럼 시와 노래와 연극을 포함한 문화가 깃든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 그의 꿈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 이춘우씨는 건축 기본 스케치까지 해놓은 상태라고 하면서 작은 포스트잇 하나를 들고 왔다. 작은 종이엔 심혈을 기울인 듯한 설계도가 그려져 있다.    

 

지금 상황에선 다소 어려움이 있지만 꼭 해보고 싶은 게 있어요. , 노래, 연극 등 문화 복합 개념을 기획해서 건물 하나로 만드는 거죠. 그래서 한 층을 시가연의 공간으로 사용하고 싶어요. 지금 가게는 30평 정도지만 약 50평 크기만 되어도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들어올 수 있을 거예요.”

 

인사동에서 건물을 짓기란 어렵다. 그렇다면 문화 복합 건물을 인사동이 아닌 다른 곳에 만들 생각이냐고 묻자, 그는 그럴 생각을 없다고 했다. “인사동을 벗어나면 의미가 퇴색합니다. 건축에서 장소성이 중요한데 인사동 안에서 건물을 만들고 싶어요.”

 

사람들에게 시가연이 어떤 곳으로 남길 바라나요?

시가연이 앞으로도 이름에 충실했으면 좋겠어요. 이름 그대로 예술을 하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들이 쉽게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요. 지금은 예술인이 연습이나 공연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점점 없어지고 있는데 시가연이 마지막 보루라고 생각하며 운영하고 있습니다.”

 

춘우(春雨)’가 본명인 그는 어릴 땐 약해보이는 이름이 싫었다고 한다. 그러나 특이한 이름 덕분에 봄비라는 특별한 별명을 얻게 됐다. 시가연이야말로 뽐낼 장소가 필요한 예술인들에게 봄비 같은 존재가 아닐까.

  

인사동에 와서도 인사동을 찾지 못하는 것은

동서남북에 서 있어도

동서남북이 보이지 않기 때문

그렇게 찾기 어려운 인사동이

동은 낙원동으로 빠지고

서는 공평동으로

남은 종로 2가에서

북은 관훈동으로 사라지니

인사동이 인사동에 있을 리가 없다

종로 1,2,3,4가가 어우러져

하루 6만 명의 발걸음이

밀려왔다 밀려가는 사람의 물결

조선시대 관인방(寬仁坊)'()'

대사동(大寺洞)'()'가 만나

인사(仁寺)라 하였으니

거기 가거든 반갑다고 인사(人事仁寺)나 하라

-이생진, 인사동 -

 

/글 사진=·윤지원 기자 dailypoem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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