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시 편지]그 여자-오민석
[소통의 시 편지]그 여자-오민석
  • 박제영
  • 승인 2019.12.03 13: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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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인 위의 그 여자
언뜻 복잡해 보이는 진리를
간단하게 빨래해 버린 여자
그 모든 헛소리들을
한 방에 엿 먹인 여자
우리가 얼마나 쩨쩨한 쉐이들인지
알게 해준 여자
부끄러워
가서 용서를 빌고 싶은 여자
우리를 울게 만드는 여자
그 사람

-『굿모닝, 에브리원』(천년의시작, 2019)-

 

*오민석 시인의 신작 시집 『굿모닝, 에브리원』에서 한 편 띄웁니다.

예전에 로빈 윌리암스가 주연한 영화 "굿모닝 베트남"이 떠오르는데, 왜일까 생각해보다가 오민석 시인이 로빈 윌리암스를 닮았나 싶어 공연히 웃음이 나는 참 싱거운 아침입니다.

대신 소개하는 시는 결코 싱겁지 않을 줄 압니다.

"그 여자"

시를 읽자마자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용접공이었던 김진숙 씨를 떠올릴 줄 압니다. 2011년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에 맞서 85호 타워크레인에 올라 무려 309일 동안 고공 농성을 벌였던, 김진숙 씨 말입니다.

지난 주말에는 "민중문학의 어제와 오늘이라는 주제"로 사람들 앞에서 주제 넘은 얘기를 했었는데요, 오늘 아침 이 시를 읽으면서,  정말로 주제 넘은 짓을 했구나, 다시 한 번 반성하게 됩니다.

제가 떠든 "그 모든 헛소리들을 / 한 방에 엿 먹"이는 시입니다. 제가 "얼마나 쩨쩨한 쉐이"인지 알게 해주는 시입니다.

고백하자면, 저는 세상의 모든 고통과 아픔을 모른 척하며, 그 덕분으로 지금까지 잘 살고 있습니다. 용산4지구 철거민 양회성, 윤용헌, 이상림, 이성수, 한대성씨가  억울하게 생을 마감할 때도 저는 모른 척했습니다.

“30원이 한 노동자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는 유서를 남기고  운수노조 화물연대 박종태씨가 생을 마감했을 때도,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때도, 세월호가 침몰했을 때도, 저는 모른 척했습니다.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는 시를 쓰겠다던 이십 대 때의 당찬 포부는 사라진 지 이미 오래, 시를 쓰면서 해마다 빚만 집니다. 점점 더 쩨쩨한 쉐이가 되어갑니다.

그 덕분으로 이렇게 잘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저를 반면교사로 삼기 바랍니다.

/박제영 시인(달아실출판사 편집장)
 

●박제영 시인. 강원도 춘천 출생. 고려대학교 기계공학과 졸업. 1990년 고대문화상 시부문 수상. 1992년 『시문학』으로 등단. 주요 저서로 시집 『그런 저녁』, 『식구』, 『뜻밖에』, 『푸르른 소멸』, 『소통을 위한 나와 당신의』, 산문집 『대화』, 『소통의 월요시편지』, 번역서 『기업과 개인의 혁명적 생존전략 23가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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