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시 편지]바깥으로부터-황규관
[소통의 시 편지]바깥으로부터-황규관
  • 박제영
  • 승인 2019.11.26 01: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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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아무도 바깥을 보지 않는다
고속 열차의 창문에는 언제나
어둑한 블라인드가 쳐져 있고
이 옷을 입었다 저 옷을 입었다 하는 가을 산은
버려지듯 지나가고 있다
바깥을 바라보는 일은
바깥에게 나를 조심스레 허락하는 일
내가 바깥이 되고 바깥이
도착지를 변경해주는 일
그러나 아무도 바깥을 보지 않는다
메말라가는 산자락의 밭을
혼자이게 내버려둔다
눈동자는 바깥의 흔적
영혼은 바깥이 쌓아올린 오두막
누구도 바깥이 되려고 하지 않을 때
바깥은 버려지고
안은 점점 작아져간다
모래알처럼 작아져간다
흙먼지처럼 떠돌기만 한다

- 『이번 차는 그냥 보내자』(문학동네, 2019)-

 

#황규관 시인의 신작 시집 『이번 차는 그냥 보내자』에서 한 편 골랐습니다.

"인간은 다른 존재들이 지어준 가건물 같은 것에 지나지 않는데, 마치 독자적으로 진화해온 것처럼 우기고 있다"는 시인의 말이 이번 시집을 흐르는 큰 정서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이제는 아무도 바깥을 보지 않는다"는 문장으로 시작하여 "흙먼지처럼 떠돌기만 한다"는 문장으로 끝을 맺습니다.

잘 살려고, 잘살아보려고, 변방을 벗어나 중심이 되려고, 너나없이 그렇게 농촌을 버리고 도시로 마침내 서울로 꾸역꾸역 모여들었지요.

그렇게 우리는 바깥을 버렸고, 마침내 바깥도 우리를 버리고 있는 사이, 미처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사이에 우리는 끝내 흙먼지가 되어 떠도는 거라고... 바깥으로부터 온 존재들이 그 바깥을 버렸다며...

시인은 그리 꾸짖습니다. 아무래도 이번 차는 그냥 보낼 수 없을 듯하네요. 좀더 곰곰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박제영 시인(달아실출판사 편집장)

●박제영 시인. 강원도 춘천 출생. 고려대학교 기계공학과 졸업. 1990년 고대문화상 시부문 수상. 1992년 『시문학』으로 등단. 주요 저서로 시집 『그런 저녁』, 『식구』, 『뜻밖에』, 『푸르른 소멸』, 『소통을 위한 나와 당신의』, 산문집 『대화』, 『소통의 월요시편지』, 번역서 『기업과 개인의 혁명적 생존전략 23가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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