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시 편지]아름다운 시-김규성
[소통의 시 편지]아름다운 시-김규성
  • 박제영
  • 승인 2019.11.05 10: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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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슈타포는 아우슈비츠에서 퇴근하자마자
제일 먼저 꽃병의 물을 갈고는
브람스를 듣고 눈물을 흘리며
하이네의 연시戀詩를 읊었다 그리고
다음날 더 많은 목숨을 가스실로 보냈다


- 『시간에는 나사가 있다』(달아실, 2019)

 

 

*김규성 시인 신작 시집 『시간에는 나사가 있다』에서 한 편 띄웁니다.

시인은 자서에서 이렇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 검열의 결벽을 넘어서지 못한 / '나만의 시'에 대한 욕심은 또 다음으로 미룬다. //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이 먼저 / 그리고 맨 나중에 읽어주면 좋겠다." '자기 검열의 결벽'이란 말에서 시인의 절차탁마가 느껴집니다. 벼리고 벼려 마침내 쇠가 칼이 되듯이, 마침내 날이 선 문장이 느껴집니다.

그렇게 벼리고 벼려 나온 "아름다운 시" 한 편을 띄웁니다. 시가 뭘까요? 문학이 무엇이고 예술이 무엇일까요?

보세요. 지금 한 사내가 있습니다. 그는 지금 막 직장에서 집에 돌아온 참입니다. 꽃병의 물을 갈아주고는 턴테이블에 브람스의 엘피를 올려놓습니다. '클라리넷 3중주 A단조 Op.114'를 들으며 가만히 눈을 감습니다. 눈가에 눈물이 맺히는가 싶더니 조용히 하인리히 하이네의 시를 읊조리기 시작합니다.

"가을엔 기도하게 하소서 / 쓸쓸함으로 그려내는 가을이 아닌 / 아름다움으로 그려내는 / 한 폭의 수채화이게 하소서"
꽃과 브람스의 음악과 하이네의 시를 사랑하는 이 사내는, 이 사내야말로 '아름다운 시'가 아닐까요?

그런데 그의 직업이 뭐였던가요? 그가 어디서 퇴근했던가요? 나치 비밀 경찰(게슈타포)인 그는 오늘도 하루종일 바쁘게 일했습니다. 직장인 아우슈비츠에서 수백 명을 가스실로 보내느라 정신이 없었거든요. 내일 더 많은 유대인들을 가스실로 보내려면, 지금은 쉬어야 합니다. 꽃에 물을 주고 음악을 듣고 시를 읊으며, 하루의 피곤을 털어내고 내일의 고된 일과를 준비해야 하거든요.

'아름다운 시'가 세상에서 가장 '참혹한 역사'를 낳는 순간 아닌가요? 시가 뭘까요? 문학이 무엇이고 예술이 무엇일까요? 아름다운 시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라고 시인이 묻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1997년인가 1998년인가 암튼 그 무렵, 독일과 폴란드 출장을 갔을 때 일입니다. 베를린 베벨광장과 폴란드 아우슈비츠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1933년 5월 10일 밤, 베벨 광장에서는 유대인과 나치를 반대하는 저자들의 책 수만 권이 불태워졌는데, 베벨 광장은 바로 그 광란의 현장이지요.

그곳의 한 대학건물(?)이 지금도 기억에 선합니다. 유리를 통해 들여다 보면 그 안에 빈 책장들만 보일 뿐입니다. 나치의 만행을 잊지 말고 반성하기 위해 만들어진 일종의 '도서관'인데요.

거기에 보면 동판이 하나 걸려 있는데, 동판에는 이런 문구가 새겨져 있습니다. "이것은 서곡에 불과하다. 책을 불태운 사람은 결국 사람도 불태울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나치가 그의 모든 책을 금서로 정하는 것도 모자라 다 불태웠을 만큼 싫어한, 유대계 혈통의 '하인리히 하이네'가 한 말이지요.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문학과 예술을 사랑할 줄 아는 '인간의 본성'이 '아름다운 시'를 낳는 것일까요? 아니면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어떤 종이든 대량 학살할 줄 아는 '인간의 본성'이 '아름다운 시'를 낳는 것일까요?

아름다운 시의 아이러니. 아름다운 시의 역설.

김규성 시인의 짧은 시 한 편이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아침입니다. 너무 길게 주절거려서 미안한 아침입니다.

/박제영 시인(달아실출판사 편집장)

●박제영 시인. 강원도 춘천 출생. 고려대학교 기계공학과 졸업. 1990년 고대문화상 시부문 수상. 1992년 『시문학』으로 등단. 주요 저서로 시집 『그런 저녁』, 『식구』, 『뜻밖에』, 『푸르른 소멸』, 『소통을 위한 나와 당신의』, 산문집 『대화』, 『소통의 월요시편지』, 번역서 『기업과 개인의 혁명적 생존전략 23가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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