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희로애락, 경험적 관찰과 투명한 묘사 보여준 서정고백록
삶의 희로애락, 경험적 관찰과 투명한 묘사 보여준 서정고백록
  • 이윤도
  • 승인 2019.10.17 15: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은길 시집 '입으로 쓴 서정시' 출간

입으로 쓴 서정시


네가 떠나가고 입이 진다
입의 안과 밖이 부르트고 허물어지더니 
입술 선까지 완전히 망가졌다

널 떠나가게 한 책임이 모두 입 탓이라는 듯
방문을 걸어 잠그고 끙끙 입을 앓아눕는다 

입이 아프니 밥도 못 먹겠고
밥을 못 먹으니 온몸이 죽을상이 되어
입을 올려다본다 하지만

입은 회로가 다른 전선처럼 
아랑곳하지 않는다 

널 싫어한 건 아니었다고
양다리 걸친 적 없다고

내 마음을 정확히 표현할 말이 없어

그냥 그렇게 둘러댄 것뿐이라고
아니라고 그런 게 아니라고

무너진 입을 쥐어박는다 소용없다

너는 떠나갔다
그저 때를 기다리던 철새처럼

조은길 시인의 시집 '입으로 쓴 서정시'(천년의시작, 140쪽, 1만원)가 시작시인선 0304번으로 출간됐다. 시인은 경남 마산 출생으로 199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노을이 흐르는 강'이 있다.

이번 시집 '입으로 쓴 서정시'는 삶의 희로애락을 경험적 관찰과 투명하고 다채로운 묘사를 통해 보여 주는 서정적 고백록이다.

시인은 밀도 높은 기억을 매개로 진실성있는 서사를 구축해 자신만의 심미적 풍경을 완성해 나간다.

해설을 쓴 유성호 문학평론가는 “세상의 정점과 바닥, 매혹과 잔혹, 구심력과 원심력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면서 타자를 향한 사랑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아름답게 보여 준다”라고 평했다. 여기서 타자란 인간과 자연을 아울러 말하며, 이는 인간 존재의 운명을 환기하는 상관물로 기능하는 동시에 시인으로 하여금 세상에 대한 관찰과 고백을 가능케 하는 요소가 된다.

이처럼 시인은 인간과 자연이 분리되어 있다고 전제하지 않고, 인간과 자연 사이에 상상적 소통이 가능하다고 믿으며 역동적 상상력으로 우주와 삶의 소통을 노래한다.

뿐만 아니라 시인은 ‘나’와 ‘타자’의 영역을 넘나들며 존재자들의 슬픔을 포착하고 존재 방식에 대한 새로운 투시와 해석 작업을 수행한다. 그 결과 조은길의 시는 우리로 하여금 세상이 강제하는 위기와 폭력에 대한 근원적 성찰과 더불어 삶의 균열에 대한 자의식, 견고한 일상을 유기체적으로 읽어내는 상상력을 일깨운다.

해설의 말처럼 서정시가 “‘자기동일성’과 ‘회감回感’의 양식”이라고 했을 때, 조은길의 이번 시집은 “서정시의 존재론을 가정 첨예하고도 구체적으로 형상화해 보여 주는 미학적 결실”이자 “내면에서 일고 무너지는 고통과 환멸의 목소리를 담은 마음의 뼈요 시간의 척추인 셈”이다.

/이윤도 기자 dailypoemnews@gmail.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