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지쳐 있는 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 "이제, 오늘은 잊고 시를 써요!"
삶에 지쳐 있는 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 "이제, 오늘은 잊고 시를 써요!"
  • 이윤도
  • 승인 2019.10.14 11: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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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호 '오늘의 이야기는 끝이 났어요 내일 이야기는 내일 하기로 해요' 출간

2001년 한국일보 등단 이후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온 길상호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오늘의 이야기는 끝이 났어요 내일 이야기는 내일 하기로 해요'(도서출판 걷는사람, 150면, 1만원)가 최근 출간됐다. 길상호 시인의 섬세한 감정선이 도드라지는 이번 시집은 "서로를 좀 더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이 곧 ‘시 쓰기’"라고 말하는 듯하다.

우리네 삶은 참 쓸쓸하여서 “언제나 겨울을 걸”(「모빌 아래 계절은 멈췄다」)어가는 것 같지만, 길상호는 그 쓸쓸함이라는 토양 위에서 은율을 만들고 언어를 변주함으로써 “눈사람을 만들어 사랑을 시작”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가끔은 머나먼 생이 택배로 배송되어 왔다 / 수명을 단축시킬 거라고 당신은 늘 반품을 강요했지만 / 주소지도 없는 박스가 나는 늘 궁금했다”(「먼 곳의 택배」), “끊임없이 중얼거리는 / 여관방 벽은 낡은 입술을 갖고 있다”(「낡은 잠을 자려고」), “다음 생이 오면 또 아프겠지요, / 책갈피를 넘길 때마다 귀신들은 / 몇 번이고 했던 말을 다시 중얼거렸다”(「책등에 기대 잠이 들었지」)라는 구절처럼 사물과 사람, 풍경의 그 안쪽까지 응시하는 길상호 시인의 시편들은 섬세하고 미더워서, 삶에 지친 독자들은 그의 언어 안에서 무장해제를 한 채 ‘오늘’을 잊을 수 있지 않을까.

“우리 앞엔 아주 짧은 햇빛이 놓여 있”(「저물녘」)을 뿐이지만, 이 저물녘 동안 그럼에도 시를 쓰고, 사랑을 하고, 내일의 이야기를 궁리하는 시인, 그가 바로 길상호다.

살짝 손을 대려 했을 뿐인데
꼬리를 끊고 달아난 도마뱀을 기억한다

흙바닥에 남은 꿈틀거림이 멈출 때까지
아무 말도 못하고 나는 꼬리만 바라본 적이 있다

일생에 단 한 번만 재생이 가능하다는,
그래서 목숨을 걸고서야 끊을 수 있다는 꼬리

뒤돌아볼 새도 없이 도마뱀은
풀숲으로 남은 몸을 내뺐었는데

아버지가 숲에 든 후, 나는 남겨진 꼬리 같았다
몸을 뒤틀며 우는 날이 많아졌다
 
나를 끊고 저세상으로 떠난 그가
사진 속에서 아직 편안하게 웃고 있다

- 「꼬리」전문

한편, ‘시인의 말’과 2부를 시작하는「꼬리」를 비롯해 시집 구석구석엔 ‘그’(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다. 먼 바다에서 끝난 ‘오늘의 이야기’가 해변으로 밀려드는 파도 속 ‘내일의 이야기’로 와 닿는 듯하다. 그렇게 다양한 오늘과 내일의 이야기들이 모여 한 군락을 이루고 있다. 시간과 공간의 방향이 제각각인 이야기들이 어떻게 얽히고 이어져 새로운 이야기를 탄생시키는가를 확인하는 것도 이 시집을 읽는 흥미로운 방식이 될 것이다.

/이윤도 기자 dailypoem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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