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박의 세계 '그물'에서 벗어나려는 인간의 비애
속박의 세계 '그물'에서 벗어나려는 인간의 비애
  • 이윤도
  • 승인 2019.10.11 08: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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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산하 시인,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시집 출간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아들의 동반이 되어가는 며느리
딸이 없으니 딸보다 예쁜데
처음 인사하러 올 때
어디 사는 것 외는 아무것도 몰랐다
아들이 좋아한다는데
사소한 이야기는 묻지 않았다
그냥 그 모습
눈 맑은 아가씨가 내 가족이
된다는데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행여 가슴에 금이 갈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신접살림, 서너 달 지나
며느리 전화를 했다

― 어머님, 고맙습니다
― 저에 대해 아무것도 묻지 않아서

박산하 시인의 시집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가 천년의시 0100번으로 출간됐다. 시인은 경남 밀양 출생으로 '서정과 현실'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고니의 물갈퀴를 빌려 쓰다'가 있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세계를 ‘그물’로 인식하고 억압과 속박의 세계를 상징하는 ‘그물’로부터 벗어나려는 인간의 고통과 비애를 노래한다. 시인은 비극적 세계관을 통해 세계를 인식하지만 삶의 좌절과 슬픔에 굴복하지 않고 존재를 억압하는 모든 것들에 저항한다.

박산하 시에서는 ‘소리’를 통해 어두운 세상에 저항하는 시편들이 주를 이룬다. 시인이 소리에 천착하는 이유는 개념화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현실을 보여 주기 위함이며, 복잡하고 변화무쌍한 삶을 소리의 순간성을 통해 감각적으로 드러내기 위함이다.

또한 비극적 세계 인식이 세계의 전망과 삶의 희망적 목표를 쉽게 설정하지 못함을 생각해 봤을 때, 시인이 소리의 휘발성을 선택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해설을 쓴 황정산 문학평론가의 말처럼 “쉽게 희망과 이상을 내세울 수 없지만 현실의 어둠을 직시하면서 그것에 끝없이 거부하고 저항하는 자세”가 비극적 세계 인식이라고 했을 때, 박산하 시에서 소리는 “비극적 세계 인식에서 세상을 견디는 단 하나의 힘이고 그 힘의 움직임을 보여 주는 어떤 징표”로 기능한다.

요컨대 박산하 시인의 이번 시집은 규정하거나 문자화할 수 없는 소리들의 세상이며, 시인은 이 소리들을 감각적 언어로 실어 나르는 언어의 심부름꾼이 된다. 우리는 이번 시집에서 불온한 세계에 저항하는 찰나의 ‘소리’를 통해 우리를 억압하는 모든 것들로부터 잠시 벗어나 감춰진 삶의 진실과 조우하게 될 것이다.

/이윤도 기자 dailypoem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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