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서석화의 쿠킹호일로 만든 세상]당근을 먹는 여자
[시인 서석화의 쿠킹호일로 만든 세상]당근을 먹는 여자
  • 서석화
  • 승인 2019.08.08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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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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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은
매끄럽게 넘어가는 게 아니야

그것은 늘 목에 걸리고
심장 가운데쯤 걸리고
뱃속에 내려가서도
가스가 차듯 헉헉거리지

낮으면서도 굴곡진 그녀의 음성이
무료한 오후 네 시 전화선을 타고 흘러나왔다

뭐 하고 있냐고?
당근을 먹고 있어

주홍빛 색깔이야 당근은
핏빛만큼 자극적이진 않지만
우윳빛만큼 순결하지도 않지
가끔 아니 자주 목구멍에 걸려

누워서 편히 먹을 수 있는
간식거리는 아니야
많이 먹으면 속도 막 쓰라린 걸?

끊임없이 몸에 걸리는 이 가시 같은 외로움 보이니?
그래 외롭다는 말이
적적한 오후 날뛰는 무서움 되어 덤비는구나

이제 당근은 반밖에 남지 않았어
창밖은 지금 날씨가 어떨까?

아, 잠깐만
당근이 목에 걸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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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나를 두드리는 소리를 듣는 날이 있다.

그것은 움직일 때나, 미동도 없이 숨만 쉬고 있을 때나
저 먼 곳으로부터 나를 부르는 암호 같은 거다.

서걱서걱...

그렇게 시간이 가고, 세월이 가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내가, 내 앞에 와 선다.

이런 맞닥뜨림!

누구니?
누굴까?

모르는 여자가 나라고 우긴다.

시인 서석화는 대구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92년 시 전문 계간지 [현대시사상] 신인상에 <수평선의 울음> 외 8편이 당선되어 시인으로 등단, 지금까지 시와 산문을 넘나드는 작품 활동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저서로는 시집 <사랑을 위한 아침> <종이 슬리퍼>, 산문집 <죄가 아닌 사랑> <아름다운 나의 어머니> <당신이 있던 시간>, 소설 <하늘 우체국(전 2권)>이 있으며, 공저로 <첫사랑, 그 마음으로> <떨림> <가족, 당신이 고맙습니다> <반성> 등 다수 작품이 있다. 서 시인은 인간의 태생적 아픔을 우회로가 아닌 직선으로 파고들어, 자아의 내밀한 목소리를 기어코 끌어올리는, 섬세하고도 정직한 문장을 쓰는 작가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기업체 강의와 함께 백화점에서 시창작 강의를 했으며, 현재 한국시인협회 상임위원으로 한국가톨릭문인협회와 국제펜클럽한국본부 회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논객닷컴>에 삼 년째 칼럼을 연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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