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한 생명 상징하는 ‘바다’ 통해 모순된 삶과 정신 치유
강인한 생명 상징하는 ‘바다’ 통해 모순된 삶과 정신 치유
  • 이윤도
  • 승인 2019.08.06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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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의 시인’ 이중도 다섯 번째 시집 ‘사라졌던 길들이 붕장어 떼 되어 몰려온다’ 출간

‘통영의 시인’으로 알려진 이중도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사라졌던 길들이 붕장어 떼 되어 몰려온다’(천년의시작/136쪽/1만원)가 시작시인선 0296번으로 최근 출간됐다. 1970년 경남 통영에서 태어난 시인은 1993년 ‘시와시학’ 시인상으로 등단해 ‘통영’ ‘새벽 시장’ ‘당신을 통째로 삼길 것입니다’ ‘섬사람’ 등의 시집을 펴냈다.

시집 ‘사라졌던 길들이 붕장어 떼 되어 몰려온다’는 일상의 부조리한 현실을 신화적 감각으로 극복하려는 초월적 의지와 그리움의 정서가 짙게 깔려 있다. 시인은 자아와 세계 사이의 거리감으로 인한 허기와 결핍을 느끼고, 이에 따라 낭만적 동경의 세계를 그리워하는 화자를 시의 전면에 등장시켜 그리움의 정서를 배가시키고 있다.

이 ‘그리움의 정서’는 이전 시집들과 맥을 같이하지만, 시선이 과거에 머무르거나 갖혀 있지 않다. 시인이 응시하는 공간도 모성적인 고향의 섬과 같은 협소한 공간이 아닌 보다 넓고 깊은 곳을 향하면서 일상의 다양한 불온성을 포착한다.

시인은 ‘불구화된 육지의 세계’와 ‘문장화된 흙의 세계’의 단면을 보여줌으로, ‘개개의 일상들이 어떻게 불확실성의 세계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가’라고 하는 물음을 던진다. 특히 시인은 자연과 인간의 간극을 좁히기 위한 상관물로 ‘바다’를 택했다. 강력한 생명력의 상징인 바다와 자맥질하는 고래의 역동적 이미지를 통해 근대의 모순을 발견하고 삶과 정신의 불구성을 치유하고자 노력한다.

표4를 쓴 이승하 시인은 “이중도 시의 매력은 ‘건강한 생명력’에 있다. 그의 시는 세련된 날렵함을 취하지 않고 원시적 생명력에 의거해, 시를 읽는 동안 마음이 뻥 뚫리는 느낌을 받았다”고 소감을 말했다.

사라졌던 길들이 붕장어 떼 되어 몰려온다

오천축국의 법에는 목에 칼을 씌우거나 뭉둥이로 때리거나 감옥에 가두는 형벌이 없다 죄를 지은 자에게는 죄의 가볍고 무거움에 따라 벌금을 내게 하지 죽이지 않는다 국왕으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매를 날리고 사냥개를 달리게 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길에 비록 도적이 많긴 하지만 물건만 빼앗고 곧 놓아준다

혜초가 밟은 오천축국의 길, 도반道伴이 되어 장안까지 따라갔을 것이다
밀교의 경전 문을 열고 들어가 시커먼 문자들과 펄 장난 하며 놀다가
문자들이 잠든 깊은 밤이면 슬그머니 나와 고승의 다반茶盤 곁에 앉곤 했을 것이다

어디에 있을까, 내가 사랑한 길들은
커다란 박 쪼개어 타고 뱃놀이하는 장자처럼
눈 부신 유리 조각 번쩍이는 바다 가로질러 농어 새끼 쫓아다니던 길
하늘을 담아 숙성시키는 빈 술독 되어 터벅터벅 걸어 다니던 산길
쓸모의 내장 모두 되새김질하여 잘게 부숴버린 게으른 황소 되어
주전자 뚜껑에 농주 부어 마시며 돌아다니던 논둑길……

두툼한 밤나무 밑동을 돌아가는 싱싱한 가을 독사처럼
내 혈관을 흘러 다니던 길들이 생각나 홀로 걸어보는 옛 오솔길

푸른 내 몸속을 흘러 다니다가
환한 그리움 따라 너에게로 갔던 길들은 또 어디에 있을까

네 가슴에서 자라 훤칠한 장송들이 되어있을까
지금처럼 눅눅하게 끓는 여름 오후에는 너에게 선선한 그늘이 되어주기도 할까
그 그늘 아래 눈 감고 앉아 매미 소리 요란한 톱질로 몇 그루 잘라
뗏목 엮어 마음의 연안에 띄워보기도 할까

아! 사라졌던 길들이 붕장어 떼 되어 몰려온다

/이윤도 기자 dailypoem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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