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서석화의 쿠킹호일로 만든 세상]프롤로그
[시인 서석화의 쿠킹호일로 만든 세상]프롤로그
  • 서석화
  • 승인 2019.07.20 18: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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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 년 가깝게 시와 산문을 써오는 동안 언제부터였을까? 내가 쓴 글을 보고 있으면 카메라가 떠올랐다.

사진이 그렇지 않은가. 사람을 담고 풍경을 담았는데 사실 그것을 찍을 때 내가 본 것은 훨씬 많고 넓었지 않은가. 그런데도 앵글의 한계에 가려 그 사람의 일부, 그 풍경의 한 편만 담지 않았는가.

분명히 어떤 장면을 찍긴 했는데 뭔가 덜 찍힌 것 같은 미진함, 어떤 대상을 담긴 했는데 찍힌 게 내가 본 그것이 맞을까 하는 의구심, 내가 쓴 글을 바라보는 마음은 그래서 늘 헛헛하고 외롭고 서먹서먹했다.

글이라는 외형에 가려 그 글을 통해 사람들에게 진짜로 건네고픈 속말은 묻혀 있었던 긴 시간, 결국 카메라 앵글을 넓히기로 했다. 글자로 된 글에, 말로 된 생각과 사랑과 진심을 같이 담기로 했다.

말에는 그 사람의 진심만큼 체온이 느껴지는 법이다. 많은 사람이 글을 읽으며 작가의 목소리도 듣는, 그래서 한 편의 글에서 이 삶을 동행하고 있는 누군가를 느끼고 조금은 덜 외롭기를, 조금은 덜 아프기를, 조금은 덜 힘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금 나는 글을 쓰고 내 글을 읽고 있는 사람들에게 말을 건넨다.

세상은 쿠킹호일 같다.

사람도 그렇다. 사람이 살아가는 삶도 그렇다. 잘 찢기고 잘 구겨진다. 반짝임도 영원한 건 아니고, 아무리 매끄러워도 먼지는 쌓인다.
그러나 찢기고 구겨지고, 빛이 흐려져 먼지가 쌓여도... 찢긴 만큼, 더 심하게 구겨진 만큼, 그 질감은 단단해진다. 단단해져서 강해지고 마침내 세상과 내가 함께 걸어온 ‘족적’이 된다.

그런 마음으로 시를 쓴다. 산문을 쓴다.
이곳에 올릴 글의 말미에 작가의 말을 담는 것은 그 때문이다. 겉만 매끈한 글을 힘주어 구겨서, 조금 더 단단해진 ‘생물’로 나와 당신들에게 도착하기를 바란다. 

/시인

시인 서석화는 대구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92년 시 전문 계간지 [현대시사상] 신인상에 <수평선의 울음> 외 8편이 당선되어 시인으로 등단, 지금까지 시와 산문을 넘나드는 작품 활동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저서로는 시집 <사랑을 위한 아침> <종이 슬리퍼>, 산문집 <죄가 아닌 사랑> <아름다운 나의 어머니> <당신이 있던 시간>, 소설 <하늘 우체국(전 2권)>이 있으며, 공저로 <첫사랑, 그 마음으로> <떨림> <가족, 당신이 고맙습니다> <반성> 등 다수 작품이 있다.
서 시인은 인간의 태생적 아픔을 우회로가 아닌 직선으로 파고들어, 자아의 내밀한 목소리를 기어코 끌어올리는, 섬세하고도 정직한 문장을 쓰는 작가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기업체 강의와 함께 백화점에서 시창작 강의를 했으며, 현재 한국시인협회 상임위원으로 한국가톨릭문인협회와 국제펜클럽한국본부 회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논객닷컴>에 삼 년째 칼럼을 연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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