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을 떠날 때, 비로소 정선이 시(詩)가 됐다
고향을 떠날 때, 비로소 정선이 시(詩)가 됐다
  • 이윤도
  • 승인 2019.07.05 10: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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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윤호 시인 신간 '정선'

2008년 국보 1호 숭례문이 탔을 때 누군가 그랬다. 이게 문화재가 오래도록 그냥 가만히 서 있으면 그랬는데, 이게 타 봐야 없어져봐야 그것이 소중함을 안다는 거다.

우리는 왜 주변 가까이 있어 놓치는 옛 것의 소중함을 다 잃고나서 깨닫는 걸까. 가벼움과 속도가 지배하는 요즘, 옛 것의 소중함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더구나 그 옛 것이 내가 살던 고향이라면 어떻겠는가.

“이제 고향은 내 기억 속에 있다 / 보고 싶은 사람은 떠나고 / 할 말은 많아도 운을 떼지 못하는 / 아버지 무덤이 있는 동네” (전윤호 ‘정선’ 시인의 말 중) 

 

떠남의 운명은 비로소 인간에게 소중함을 깨닫게 해준다. 그리고 고향의 기억이 오래도록 삶을 견디게 한다. 

시인 전윤호는 1964년 강원도 정선에서 태어났다. 그의 신간 ‘정선’에 담긴 60여편의 시는 모두 고향 정선을 노래한다. 굽이굽이 정선이고, 구절양장 에돌아 흐르며 결국 정선이다. 독자들에게 모두 꿈꾸는 이상향, 모두가 그리워하는 기억 속의 고향을 그린 것이다. 실제로 시집은 '고향'이라는 시로 시작해 '정선을 떠나며'라는 시로 마무리된다.

‘정선’이라는 특정 지역을 그렸다기보다는 우리 모두가 꿈꾸는 어떤 이상향(최준의 말을 빌리자면 ‘도화원’이겠다.)을 그리고 있고, 우리 모두가 그리워하는 기억 속의 고향을 그린 시집이라 하겠다. 이별과 서러움과 같은 전통적인 정한(情恨)의 정서가 전편을 누비지만, 들풀처럼 무성한 그의 고향 사랑이 행간들마다 절절하게 녹아들어 있다.

정선의 겨울은 축구 시즌
축구장도 공도 없는 아이들이
운동복도 축구화도 없이
꽁꽁 언 강으로 모이지

작은 돌부리 두 개로 만든 골대와
차기 적당한 넓적한 돌이 필요해
추위를 무시하는 자신감과
넘어져도 바로 일어나는 투지가 전부

눈 쌓인 자갈밭에 불 피우고
얼어터진 신발을 녹여보지 않은 사람은 몰라
추우면 추워질수록
공은 더 잘 나간다는 걸

겨울엔 태백산맥 한가운데에서
어차피 돌부리를 걷어차며 살아갈 자들이
콰당콰당 넘어지는 낙법을 배우며
깊은 수심을 숨긴 얼음판을 뛰어다니지
날이 저물도록 멈추지 않지
― 「돌 축구」 전문

이번 시집은 정선을 고향으로 둔 사람들에게는 당연히 큰 선물이 될 것이다. 하지만 고향이 꼭 정선이 아니어도 좋겠다. 정선이 아니어도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살고 있다면 그 사람들에게도 이번 시집은 따뜻한 선물이 될 것이다.

삶을 살아내느라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바쁜 일상과 치열한 경쟁 속에서 잃어버렸던, 유년의 기억들, 고향의 기억들, 조금은 더 순수했던 시절의 꿈들……. 이번 시집은 어쩌면 타임머신이 아닐까 싶다. 전윤호 시집 / 달아실출판사 펴냄 / 152쪽 / 1만 2000원.

/이윤도 기자 dailypoem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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