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정영희의 산문노트]복을 저금한 적이 있나요?
[소설가 정영희의 산문노트]복을 저금한 적이 있나요?
  • 정영희
  • 승인 2019.06.19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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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는 시간 빼고 늘 뭔가를 하고 있다. 일평생 소파에 들어 누워 연속극을 본 적이 없다. 책을 보거나, 글을 쓰거나, 영화를 보거나, 신문을 꼼꼼히 보거나, 집안일을 했다. 빨래하고, 청소하고, 설거지하고, 간명지에 사주를 풀고, 반려견과 산책을 한 후, 씻기고 닦이고 말려주었다.

​집과 오피스텔을 오가며 시장 봐 오고, 시장 봐온 것들로 음식을 만들었다. 늘 집에는 수정과가 있다. 며칠 전에는 사과 쨈을 만들었다. 책상에 앉아 책을 보거나, 글을 쓰거나 혹은 싱크대 앞에서 요리를 하는 게 가장 즐겁다. 누군가 배가 고프다고 하면 마음이 아파 견딜 수가 없다. 얼른 음식을 만들어 먹여야 마음이 편하다.

​한 20년 쯤 잠옷에 앞치마를 두르고, 책상과 싱크대를 오가며 살았다. 젊었을 땐 쇼핑도 좋아했지만, 요즘은 거의 백화점을 가지 않는다. 둘러보면 모두 버리고 갈 것들밖에 없다.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데 더 이상 집안의 물건이나, 신발이나, 옷이나, 가방을 산다는 게 죄를 짓는 것 같다.

​별명이 ‘리폼의 여왕’이다. 있는 옷 고쳐 입고, 누군가 주는 가방이나 옷 얻어 입으며 검소하게 사는 게 참으로 마음이 평온하다. 백화점은 욕망이 들끓는 곳이다. 파는 사람도 쇼핑하는 사람도 모두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무한궤도를 돌고 있는 듯하다. 그 궤도에서 한 발 살짝 빠져나온 듯한 기분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Peaceful! 평화롭다. 비로소 맑은 물에 천천히 헤엄치며 사는 늙은 잉어 같다.

​늘 종종거리며 살았지만 돌아보면 ‘복(福)’을 저금한 적이 없다. 중고등학교 때 남들은 모두 공부할 때 책에 빠져 늘 하늘과 바람과 숲과 별과 새소리에 귀를 기울이느라 일류 대학을 가지 못했다.

​대학을 가서도 마찬가지다. 디자인학과에 갔으면 디자인에 충실해야할 텐데, 도서관에 앉아, 세상의 번뇌는 혼자 다 짊어진 듯, 펜으로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듯, 되지도 않는 소설을 쓴다고 20대의 그 푸르른 청춘을 다 날려버렸다. 한없이 복을 저금해야할 시기에 말이다. 낮밤을 뒤바꿔 살았다. 낮밤을 뒤바꿔 살기는 지금도 여전하다. 새벽 서너 시에 잠들고, 아침 10시 11시 쯤 일어난다. 비즈니스로 점심 약속을 하기는 매우 힘든 바이오리듬을 가지고 있다.

​돌아보면 한 번도 빈둥거린 적도 없는데, 딱히 복을 저금하지도 않았다. 여기서 말하는 ‘복’이란 극히 세속적인 것을 말한다. 잘 먹고 잘 사는 것. 좋은 대학 나와서 좋은 직장 다니고, 고액 연봉을 받으며, 강남의 수십 억 짜리 아파트에 살고, 좋은 차 타고, 근사한 식당에서 외식하고,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명품을 두르고, 마음껏 해외여행을 다니며 사는 삶을 말한다.

​그렇게 사는 사람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게 살 수 없는 사람들 보다 엄청 열심히 ‘복’을 저금하고 살았다는 걸 알 수 있다. (만약 그렇지 않는 사람이 잘 산다면, 그건 우리가 알 수 없는 전생이나 전전생에 복을 많이 저금해 뒀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해석하지 않고는 천벌 받을 것 같은 사람이 잘 사는 걸 이해할 수가 없다.) 일단 좋은 대학을 들어가려면 청소년기 때 얼마나 힘들게 공부를 했겠는가.

​나보다 두 살 많은 오빠가 있다. 오빠와 난 각자의 방에서 공부를 했다. 내 방문을 열면 오빠가 책상에 앉아 있는 모습이 보인다. 오빠의 방문이 닫혀 있을 때도 난 오빠가 책상에 앉아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중고등학교 6년을 오빠가 누워서 자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책상에 엎드려 자다 아침에 학교를 갔다. 의사가 되고 싶었지만 서울의 너무 높은 대학의 의대에 지원해서 낙방을 했다. 지방대 의대를 지원했으면 합격했을지도 모른다. 오빠는 한양대 공대를 갔다. 대기업에 십년 쯤 다니다가 고향으로 내려와 건설업을 시작했다. 성공했다. 잘 모르긴 하지만 돈을 많이 벌었다. 우리 집이 부도가 났을 때는 말없이 생활비를 보내 주었다. 정말 내게 한 번도 돈을 보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정확한 날에 그저 통장에 돈만 넣었다.

​자신이 생각하는 올바른 삶을 실천하며 살았다. 나와 피를 나눈 오빠지만 존경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조카 둘을 성당에서 결혼을 시킬 때도 축의금을 받지 않았다. 그동안 오빠가 한 축의금의 단위를 생각하면 놀라운 결정이었다. 현역일 때는 성당을 지어주기도 했다. 지금은 사업을 접었지만 성당의 머슴처럼 성당보수공사를 해주며 거의 성당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 사이 사진작가가 되어, 요즘은 재능기부를 하며 살았다.

​큰조카는 일본에서 살고 둘째 조카는 파리에서 산다. 남들이 보면 복이 많은 것 같지만 평생 옆에서 지켜본 나는 안다. 오빠는 평생 복을 저금하며 살았다. 의사가 되지는 못했지만 늘 주위사람들을 도우며 살았다. 청소년기 때는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게 복을 저금하는 거다. 20대 때도 마찬가지. 그 이후로는 덕을 베풀어 복이 마르지 않게 해야 한다. 덕은 꼭 물질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을 불쌍히 여기고, 불의를 부끄러워하고, 겸손하게 살며, 옳고 그름을 분별해서 행하는 마음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대개 부모 탓을 한다. 그럼 고아들은 모두 도독이 되어야 맞는다. 절대 아니다. 역학자로서 한 마디 하자면 다 팔자대로 산다. 그 팔자라는 게 그 사람의 성품이나 생활태도와 거의 일치한다. 운이 나쁜 사람은 인생을 제멋대로 산다. 청소년기 때는 공부 안하고, 20대 때는 술 퍼먹고 놀다 좋은 곳에 취직 못한다. 겨우 취직을 했으면 감사하는 마음으로 다니지 않고, 불평불만만 가득해서는 금방 때려치우길 반복한다.

​운이 없는 사람은 대개 부정적인 사고를 하며, 전부 남의 탓을 하며, 감사할 줄 모르는 특성이 있다. 그런 사람은 ‘복’을 전혀 저금하지 못한다. 그나마 있던 복도 닥닥 끍어 탕진해 버린다. 그러면서 복 있게 잘 사는 사람들을 욕한다. 부모 잘 만나서 그렇다고, 줄을 잘 서서 그렇다고, 운이 좋아서 그렇다고. 다 맞는 말이다. 부모 잘 만난 게 아니라 부모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니 못난 부모로 만들지 않은 것이고, 긍정적인 사고를 하니 좋은 인연을 만나게 되어 운이 좋아지는 것이다.

​복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성실하고, 착실하게 타의 모범이 되는 삶을 산다. 난 나 자신을 안다. 남들 공부할 때 공부 안하고, ‘글쟁이’가 되겠다고 미쳐 날뛰었으니 그 과보(果報)를 당연히 받는 거다. 이렇게 겸허하고 가난한 마음으로 상담 일을 하며, 짧은 글이라도 쓰고 사는 삶에 자족한다. 가난하게 살다보면 ‘가난의 미학’이라는 게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일단 욕망에 꺼들리지 않는 고요한 마음이 좋다.

​글을 써서 먹고 사는 사람은 0.6%도 안 된다. 베스트셀러가 되기는 로또복권 당첨되기 보다 어렵다. 그러나 나는 어쩌다가 명리학 공부를 하게 되어 미약하게나마 사람들에게 도움 되는 말을 해주며, ‘일용할 양식’을 얻을 수 있으니, 다른 글쟁이들에 비해 복 받은 셈이다. 다시 말하자면 ‘명리학 공부’를 한 게 나로서는 ‘복’을 저금한 일이 된 셈이다.

​제발 젊은이들에게 말하노니, 나라 탓, 부모 탓, 사회 탓 하지 말고 복을 저금하길 바란다. 복을 저금한 적도 없으면서 복 받길 원한다면 도독의 심보와 같다. 사과가 익어 따먹으려 해도 몇 년은 기다려야 한다. 그 사이 가지치기도 해야 하고, 벌레도 잡아주고, 천둥 번개도 견뎌야 하고, 약도 쳐 줘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산사과도 가을이 되어야 하고, 산사과를 따러 산에 올라가야하는 수고로움이 있어야 한다. 하물며 복을 저금하는 일이 호락호락하겠는가. 지금 당신의 삶이 힘들고 고통스럽다면 복을 저금하는 순간이다.

​‘인격의 핵심은 성실함이다(김형석 박사).’ 이 말이 참으로 좋다. 천재는 성실함을 이기지 못한다. 성실함은 모든 복의 근원이다. 복은 검소함에서 오고, 덕은 겸손함에서 온다. 성실함에는 검소함과 겸손함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허영에 찬 사람이 성실할 수 없고, 교만한 자가 성실할 수 없다.

​매일매일 복을 조금씩 저금하세요. 어느 날 당신의 항아리에 복이 가득 넘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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