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우의 短文斷想] 음식은 단순한 욕구 기제가 아니다
[필우의 短文斷想] 음식은 단순한 욕구 기제가 아니다
  • 필우
  • 승인 2019.06.13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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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한낮 기온이 40도에 육박한 날에 경남 통영에서 3박4일을 머문 적이 있다. 이순신의 무훈을 기리는 한산대첩축제가 열리고 있는 시기였다. 저녁이면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한 마리 하이에나처럼’ 통영의 뒷골목을 뒤졌다. 강구안 문화마을 뒷골목에 들어서면 백석(1912~1996)을 만날 수 있다. 그의 시를 담은 시화가 점포 빈 담벼락을 가득 채우고 있다.

백석의 시에는 음식에 관련된 것이 많다. 가장 유명한 것이 당시 평양냉면을 생생하게 묘사한 ‘국수’라는 시다. 냉면 한 그릇을 놓고 그는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심심한 것은 무엇인가’라고 감탄해 마지않았디. 요즘 평양냉면을 표현하는 데 가장 많이 사용하는 ‘슴슴하다’는 심심하다의 북한 사투리다. 
   
백석 시의 음식에 대해 소래섭 울산대 국어국문학부 교수는 ‘백석 시에서 음식은 정신적 육체적 결핍을 보충하거나 자신의 사회적 욕망을 드러내기 위한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그의 시에서 음식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빛을 시간과 공간 속으로 확장시키는 어떤 존재로서 나타난다는 점에서 기호론적 분석틀을 넘어서고 있다.’고 평하고 있다.
 
음식을 단순히 배를 채우는 욕구의 도구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상체질 이론을 만든 동무 이제마에 따르면 소화된 음식물은 상하로 운동하며 위로 올라간 기(氣)는 보고, 듣고, 말하는 형이상학의 에너지로, 아래로 내려간 기(氣)는 형이하학의 운동을 돕는 에너지가 된다. 美 밀러스빌대 캐롤 M. 코니한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음식을 먹는 것은 성교처럼 정신과 물질을 포함한 외부적인 것들이 신체의 경계면을 지나 몸속으로 합체되는 경험‘이라고 그의 저서 <음식과 몸의 인류학>에서 적었다. 단순한 허기를 채우는 기제가 아닌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음식에 대한 인문학적 논의가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지나친 먹방에 대한 반동이다. 사회학, 민속학, 역사학, 인류학, 기호학, 정신분석학 분야로 음식에 대한 인문학적 논의가 확장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석의 시가 다닥다닥 붙은 통영의 뒷골목을 걷노라면 식욕이란 원초적 본능이 꿈틀거리고 요동친다. 푸드 포르노가 판치는 세상, 현대인의 음식에 대한 다소 ‘무식한’ 욕망이다. 

김삿갓 김립은 흰 죽 한 그릇(粥一器)을 이렇게 읊었다.

다리가 네 개인 소나무 밥상에 죽 한 그릇(四脚宋盤粥一器)

푸른 하늘과 흰 구름 그림자가 어른거리네(天光雲影共徘徊)

주인장 도리가 아니라고 무안해 하지 마오(主人莫道無顔色)

나는 원래 거꾸로 비치는 청산을 사랑하오(吾愛靑山倒水來)
 

희멀건 죽 그릇에 쌀알이 얼마나 없었던지 건너편 청산이 비친다. 얻어먹는 주제에 쌀알 개수를 헤아리기보다 주인장의 부끄러운 마음을 헤아리는 정서가 심히 아름답다. 상다리는 네 개나 되는데 반상(盤上)에는 죽 그릇 달랑 하나가 주는 상대적 부족함을 하늘과 구름, 청산을 담아서 너끈히 채워버린다. 아니 채우고도 남음이다. 푸드 포르노가 만연한 세상에선 엄두 내지 못하는 초연함이다. 음식은 단순한 욕구를 채우는 기제가 아니다. 자연을 오롯이 담은 철학의 근원이다. 

/칼럼니스트 필우(苾旴)
 

문학을 좋아했지만 취업이 잘된다는 소리에 솔깃해 공대를 진학하면서 인생 굴절을 맞았다. 전공과 거리가 가장 먼 민중노래패에서 문학 대신 문화운동을 했다. 사회 진출은 정의로워 보였던 기자직을 택했으나 뜻한 바를 충분히 펼치진 못했다. 의학전문기자, 경제월간지 편집장을 거쳐 지금은 허허벌판 노지로 진출해 잡문을 쓰고 있다. 음식칼럼니스트, 외식컨설팅, 언론홍보컨설팅, 역사문화 답사, 문화관광축제 평가 및 자문 등과 같은 잡다한 일에 관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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