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시 편지]'동물들의 슬픈 진실에 관한 이야기'에 나오지 않는... -박제영
[소통의 시 편지]'동물들의 슬픈 진실에 관한 이야기'에 나오지 않는... -박제영
  • 박제영
  • 승인 2019.06.10 22: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브룩 바커의 『동물들의 슬픈 진실에 관한 이야기』에 나오지 않는 어떤 동물, 할수없이사람에 관한 이야기

대한민국 상위 1%라는 당신들
국민이라 쓰고 개돼지라 읽는 당신들
은 사람일까

키위라는 새는 아픈 기억을 5년 이상 간직한다는데,
그 많은 아픔들을 잊은, 키위보다 못한 당신들을
뭐라 읽어야 할까?
닭? 개똥지빠귀?
뭐라 읽어야 할까?

생쥐는 동료 생쥐의 아픔을 이해하고 똑같이 아파한다는데,
그 많은 아픔들을 아파하지 못하는, 생쥐보다 못한 당신들을
또 뭐라 읽어야 할까?
두더지 아니면 스컹크?
라고 읽어야 할까?

두 마리의 개구리가 같은 연못에 있어도 종이 다르면 서로의 소리를 이해하지 못한다는데,
같은 종인데도 사람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개구리보다 못한 당신들을
도대체 뭐라 읽어야 할까?
코모도왕도마뱀?
게코도마뱀?

아서라, 개돼지가 울고 웃겠다
닭이 울고 웃고 개똥지빠귀가 울고 웃고 두더지가 울고 웃고 스컹크가 울고 웃고 코모도가 울고 웃고 게코가 울고 웃겠다
세상의 모든 포유류 양서류 조류 어류 하다못해 아메바 플라나리아 무척추 동물까지 모두 다 울고 웃겠다
억울해서 울고 어이없어 웃겠다

안 되겠다 당신들은 그냥
할수없이사람
이라고 읽을 수밖에 없겠다

대한민국에는 할수없이사람이라는 희귀종이 서식하고 있다

- 『시와경계』(2019년 여름호)

 

오랜만에 졸시를 띄웁니다. 『시와경계』 여름호가 조만간 나올 텐데, 먼저 시편지로 띄우네요. '사람 같지 않다'는 말, '짐승만도 못 하다'는 말을 곰곰 생각하면 심각한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인간 본위'의 사상을 전제로 하는 것이지요. 사람이 만물의 척도가 된다는 것이지요.

만물이 인간의 말을 할 줄 안다면, 뭐라 답할까 궁금합니다. 지구가 병든다면 그건 순전히 인간이라는 종 탓이 아닐까 싶은데 말입니다. 암튼, 사람도 그저 생태계를 이루는 하나의 종일 뿐이니 모두 다 함께 살아가는 것이 자연의 섭리고 이치일 텐데, 사람 중에서 '돌연변이 종'이 생겨나 "나만 최고다! 나만 잘났다!" 설쳐대니 걱정입니다.

'할수없이사람'이라는 희귀종 말입니다. 흡혈도 한다는데, 물리지 않도록 조심해야겠습니다.

 

#추신. 김재룡의 첫시집 『개망초 연대기』가 드디어 전국 서점에 깔렸습니다. '할수없이사람'에게 물린 한 가계의 슬픈 기록입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의 아픈 기록이기도 하겠습니다.

/시인(달아실출판사 편집장)

●박제영 시인. 강원도 춘천 출생. 고려대학교 기계공학과 졸업. 1990년 고대문화상 시부문 수상. 1992년 『시문학』으로 등단. 주요 저서로 시집 『그런 저녁』, 『식구』, 『뜻밖에』, 『푸르른 소멸』, 『소통을 위한 나와 당신의』, 산문집 『대화』, 『소통의 월요시편지』, 번역서 『기업과 개인의 혁명적 생존전략 23가지』 등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