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정영희의 산문노트]그리움의 맛
[소설가 정영희의 산문노트]그리움의 맛
  • 정영희
  • 승인 2019.05.28 15: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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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을 떠나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모르는 게 하나 있다는 걸 알았다. 바로 음식이다. 물론 외국에 산다면 당연히 김치일 것이다.

- 김치찌개와 김치 볶음밥이지요.

언젠가 아들에게 너는 우리 집 밥의 소울 푸드는 뭐냐고 물었더니 돌아온 답이다. 김치찌개와 김치 볶음밥은 절대 배신하는 법이 없다. 단 조건이 있었다. 반드시 ‘엄마표 신김치’여야 되고 약한 불에 30분 이상 푹 끓여야 한다는 것이다.

오랜만에 고향엘 가기 위해 기차표를 예매했다. 세상이 좋아져서 SRT 고속열차를 타고 가면 한 시간 반이면 도착한다. 오후 2시 기차를 끊고 돌아오는 기차는 9시 걸 예매했다.

친구둘이 역으로 마중 나올 것이다. 그들을 만나 팔공산을 드라이브하고 좋은 찻집에서 차를 마시고 수다를 떨다, 이른 저녁을 먹고 올라와도 서울 도착하면 10시 반 밖에 되지 않는다. 인사동 나갔다오는 시간이면 충분히 가능했다.

문제는 저녁 메뉴였다. 난 대구를 내려가면 먹는 음식이 딱 두 종류가 있다. 서울에서는 결코 먹을 수 없는 음식이다. 육사시미와 막창이다. 다 술 안주다. 친구 둘 다 좋아하는 음식이다. 육사시미는 일명 ‘뭉티기’라고 한다. 서울에서는 거의 먹지 않는다. 여기서 막창은 돼지 곱창을 말한다. 서울에서는 곱창을 한 번도 먹어 본 적이 없다.

육사시미는 들안길의 식당 ‘송학구이’에서만 먹고, 막창은 수성못가의 식당 ‘아리조나’에서만 먹었다. 생각해보면 육사시미를 처음으로 먹어본 곳이 들안길의 ‘송학구이’에서다. 회는 날것으로 먹지만, 쇠고기를 날것으로 먹어보진 않았다. 기껏 육회정도였다.

20여 년 전 처음으로 육사시미를 먹어본 나는, 세상에 이런 맛도 있구나 싶었다. 거의 일주일에 한 번씩 내려간 적이 있다. ‘오타쿠’형이라 한번 꽂히면 물불 안 가리고 한참을 빠져 있다가 정신을 차리곤 했다.

이게 내 삶의 원형인 것 같다. 사랑도 이렇게 했고, 우정도 이렇게 했고, 글도 이렇게 썼고, 아들도 이렇게 키웠고, 명리학 공부도 이렇게 했다. 첫사랑과 결혼 했고, 한번 맺은 우정은 평생을 갔고, 미친 듯이 장편소설들을 써냈으며, 아들이 걸음마를 하기 전까지는 두문불출 아들만 보았고, 현재 역학연구원을 하고 있다.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때는 후회를 하기도 하고 안하기도 했지만, 늘 마음은 상처투성인 채로 아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톱만큼씩 내 영혼이 성숙해지고 있음을 안다.

- 엄마는 자기 인생 뜨겁게 사느라 아들이 뭣에 관심이 있는지 모르잖아요.

사춘기 아들의 이 한마디 때문에 삼수를 할 때까지 ‘운짝’을 했다.

서울에서 제법 유명한 식당에서 육사시미를 먹어 봤는데 아니었다. 그건 내가 처음 육사시미를 먹을 때 찍어 먹은 ‘양념장’과 달랐기 때문이다.

가끔 대구를 내려가면 친구들은 송학구이 보다 더 맛있는 집이 있다며 경산으로, 자인으로, 동촌으로 데려갔지만 내 입맛에는 송학구이 육사시미가 제일 맛있었다.

막창도 마찬가지. 3초마다 번뇌에 시달리던 푸르른 시절, 거푸 두 잔의 찬 소주를 허기진 위장에 틀어넣고, 숯불에 자글자글 굽히고 있는 노르스름한 막창을 된장과 가는 파와 풋고추를 다져넣고 만든 ‘소스’에 찍어 먹은 나는, 어? 세상에 이런 맛도 있구나 싶었다. 그 전에는 한 번도 곱창을 먹어본 적이 없다. 지금도 대구 내려가서 수성못가의 ‘아리조나’ 막창 아니고는 곱창을 먹지 않는다.

당연히 ‘송학구이’에서 육사시미를 먹는 줄 알았다. 근데 한 친구가 지병이 있는데 의사가 쇠고기를 먹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다. 쇠고기를 먹지 말라고 한건 쇠고기 기름이 몸 밖으로 배출이 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육사시미는 기름기가 전혀 없다.

그럼 ‘아리조나’에서 막창을 먹자고 했다. 그러자 그 친구는 ‘아리조나’ 보다 더 맛있는 집이 많다며 다른 식당에 가길 원했다. 나는 꼭 ‘아리조나’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원래 가기로 했던 ‘송학구이’에서 저녁을 먹는 걸로 일단락되었다. ‘송학구이’에서 육사시미를 시키면 간과 천엽, 샐러드와 회 초밥, 생선구이와 새우튀김, 크게 썰어 오래 끓인 무국과 미나리무침, 고구마 맛탕 등 따라 나오는 음식이 많았다.

저녁 설거지를 하며 나는 왜 굳이 육사시미는 ‘송학구이’에서 먹어야하고, 막창은 ‘아리조나’에서 먹어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했다.

결국 음식의 맛은 ‘그리움의 맛’이다. 첫사랑처럼 처음 먹어볼 때의 그 첫맛, 첫 인식이 뇌리에 박혀 고향을 떠나 있어도 늘 그 맛이 그리운 것이다. 다른 집의 육사시미와 막창이 맛이 없다고 느껴지는 건 그 양념장과 소스의 맛 때문이다. 사실 고기와 막창의 맛은 거기서 거기다. 결국 그 식당의 독특한 양념장과 소스가 맛을 좌우하는 것이다. 처음 그 양념장과 소스에 육사시미와 막창을 찍어 먹은 이후, ‘그 맛’은 화인처럼 뇌의 지문에 인식된 것이다.

그러나 고향을 떠나지 않고 계속 한 도시에서 살면서 더 맛있게 한다는 새로운 집을 찾아다닌 친구들은 내가 왜 굳이‘송학구이’와 ‘아리조나’를 고집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 맛’이 왜 그리운지 모른다. ‘그 맛’ 보다 더 맛있는 집이 많다고 우겼다.

고향을 떠나보지 않은 사람은 인생에서 딱 두 가지를 모르고 사는 것 같다. 하나는 ‘언제나 돌아갈 수 있는 곳’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한번 고향을 떠난 사람은 결코, 다시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안다. 그러나 ‘언제나 돌아갈 수 있는 곳’이 있다고 믿으며 산다. 고향이란 ‘태’를 묻은 곳이다. 내 육체의 일부가 묻혀 있는 곳이다. 그러나 그들은 돌아갈 고향이 없다. 다른 하나는 ‘그리움의 맛’이다.

어느 겨울날, 마들렌과 보리수꽃차를 마시며 과거를 회상하는 소설이 있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이다. 그 마들렌은 옛날 할머니가 구워주던 마들렌 맛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마르셀 프루스트는 그 ‘그리운 맛’을 매개로 독자가 지쳐 나자빠질 정도의 방대한 소설을 썼다.

여행을 하다보면 명소와 풍경은 모두 잊어버리는데, 맛있는 음식을 먹은 곳은 기억에 남아 있다. 오래 전 파리 몽마르트 언덕에서 닭고기를 넣은 팔뚝만한 바게트 빵을 먹은 걸 잊지 못한다. 그 바게트 빵을 먹기 위해 파리의 몽마르트 언덕엘 가고 싶다.

또한 독일 뒤셀도르프의 어느 벼룩시장에서 먹은 ‘부어스트(겨자소스를 얹은 화이트 소시지)’를 잊지 못한다. 배가 몹시 고플 때면 그 부어스트가 먹고 싶다. 얼마 전부터 마트에 부어스트 소시지를 팔았다. 그러나 그 맛은 아니었다. 아마 지금도 뒤셀도르프 벼룩시장에 가면 숯불에 구운 ‘부어스트’를 팔 것이다.

베트남 길거리에서 먹은 바게트 빵과 에스프레소 커피. 5월, 나무그늘 하나 없는 중국 자금성을 둘러보고 나왔을 때 사먹은 싸구려 아이스케키. 부산 자갈치 시장 어귀의 붕어빵. 삼천포 시장에서 서서 먹은 갑오징어. 일본의 어느 특급호텔에서, 버터에 구워 철갑상어 알인 캐비아를 발라 먹은 식빵. 중국 서안에서 먹은 뺭뺭면. 대만에서 먹은 민물고기 조림. 홍콩에서 먹은 인도 음식, 커리와 난(어쩌다 인도 전문 음식점에 가게 되었다). 중국 청도에서 먹은 양꼬치...

그 곳에 다시 가고 싶은 건 ‘그 맛’ 때문이다.

파프리카와 미나리와 훈제연어를 맨 김에 싸서 먹는 건, 외국으로 이민을 가버린 후배와만 먹었다. 그 후배가 떠난 후 난 한 번도 훈제연어를 김에 싸 먹지 않았다.

하여, 음식이란 시간에 대한 ‘그리움의 맛’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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