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우의 短文斷想] 문래동 영단주택과 인심 좋은 칼국수집
[필우의 短文斷想] 문래동 영단주택과 인심 좋은 칼국수집
  • 필우
  • 승인 2019.05.21 22: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철재단지 골목. 이 곳은 원래 일제하 조선주택영단이 지은 영단주택 단지가 아직도 남아 있다. 일제가 중일전쟁 도발 후 조선을 병참기지화 하기 위해 군수산업체를 늘리면서 이곳에 근무하는 노동자 주택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었다.

문래동 집단주거단지는 1940년대 초반 조성됐다. 상도동, 대방동 등에 영단주택이 건립됐지만 모두 사라지고 문래동만 시간이 멈춰진 채 남아 있다. 해방과 한국전쟁을 이후 이 곳은 국가재건에 없어선 안 될 산업단지로 발돋움 했다.

한국전쟁 후 고물상 밖에 없었던 이곳에 1955년 삼창철강을 시작으로 1968년 포항종합제철(현 포스코)이 들어서면서 대표적 철재단지가 됐다. 청계천 복개로 인해 밀려난 스테인리스 업체들도 문래동으로 옮겨온 게 이 무렵이다.

1980년대까지 몸집을 불려가던 이곳이 외환위기와 신소재에 밀려 지금은 차츰 없어지는 추세다. 그래서 문래창작예술촌 같은 공간예술하는 이들과 외식업체 등이 자리를 채우고 있다. 그 옛날 쇳가루에 시달린 칼칼한 목을 삼겹살이 아닌 값싼 국수로 때웠음직한 정취를 만날 수 있다.  

배고픈 노동자의 주린 배를 채워주기 위해 그릇이 넘치도록 담아줬을 것만 같은 인심이 있는 곳이 있다. 쇳덩이를 다루는 공장과 공장 사이에 있는 영일분식. 그곳에 가면 왠지 모르게 주린 배를 허겁지겁 채우던 그때 그 시절 가난한 노동자의 체취가 느껴진다.

지금도 맨손으로 슥슥 비벼주는 비빔국수와, 양재기가 철철 넘치도록 끓여대는 칼국수. 비빔칼국수는 이 집의 시그니처 메뉴다. 국수 양이 하도 많아 만두 맛보기는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러니 여럿이 가야한다.

국수 한 젓가락 말아 올리면 이마 맞대고 국수 한보시기 입안에 욱여넣고 하루를 마감했던 무쇠노동자들의 애환이 그려진다. 아! 뒷골목 저렴한 무한리필 국수집이라고 무시하지 말자. 이래봬도 점심시간 몰릴 때는 길게 대기줄을 서야 하는 가성비 좋은 맛집이다.   

1956년 6월 ‘문학예술’을 통해 발표한 김광식의 소설 <213호 주택>에는 상도동 영단주택이 자세히 묘사돼 있다. 공장 자동화로 쫓겨날 위기에 처한 인쇄공장 기사 김명학을 통해 1950년대 후반 영단주택의 풍경과 그곳의 일상이 잘 묘사돼 있다.

“이 로터리 이 길을 기점으로 주택이 좌우로 줄지어 아득히 보이는 산허리에까지 뻗치었다. 잔잔한 계곡을 타고 자리 잡은 꼭 같은 형의 특호주택, 꼭 같은 형의 갑호 주택, 꼭 같은 형의 을호 주택이, 줄줄이 좌우로 마치 전차 기갑사단이 푸른 기를 꽂고 관병식장에 정렬하여 서 있는 것 같은 감이다. 관악산의 줄기가 병풍처럼 천여 호의 주택을 둘러쌌다. 이 주택촌을 상도동이라고 한다.”

문학 작품에는 우리 기억과 시선 속에 사라진 역사가 들어있다. 서울시는 시민 기억 속에 공존하는 서울의 옛 모습을 담은 소설을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김광식의 소설 <213호 주택>은 서울미래유산 후보감이다. 영등포 영단주택일대는 이미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칼럼니스트 필우(苾旴)
 

문학을 좋아했지만 취업이 잘된다는 소리에 솔깃해 공대를 진학하면서 인생 굴절을 맞았다. 전공과 거리가 가장 먼 민중노래패에서 문학 대신 문화운동을 했다. 사회 진출은 정의로워 보였던 기자직을 택했으나 뜻한 바를 충분히 펼치진 못했다. 의학전문기자, 경제월간지 편집장을 거쳐 지금은 허허벌판 노지로 진출해 잡문을 쓰고 있다. 음식칼럼니스트, 외식컨설팅, 언론홍보컨설팅, 역사문화 답사, 문화관광축제 평가 및 자문 등과 같은 잡다한 일에 관여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