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하고 힘든 삶, 나만 그런 게 아니었어요”
“피곤하고 힘든 삶, 나만 그런 게 아니었어요”
  • 이윤도
  • 승인 2019.05.20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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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등단 7년만에 첫 시집 낸 조율 시인

“사진 좀 많이 찍어주시면 어떨까요.”

자신의 시집을 들고, 포즈를 취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열여덟 소녀같다. 첫 번째 시집 <우산은 오는데 비는 없고>(시인동네 시인선 107, 9천원)을 낸 조율(본명 조윤희, 36세) 시인을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5월 중순의 어느 목요일 저녁, 경기도 수원의 독립서점 <서아책방>에서 만났다.

시인과의 첫 만남은 정작 인터뷰보다 흡사 화보촬영에 가까울 정도로 셔터소리가 난무한(?) 놀이시간에 가까웠다. 무슨 시인이 이렇게 사진 욕심이 많을 줄이야. 아쉽게도 기자가 사진작가가 아니기에 자신 있게 시인에게 전달할 만한 사진은 정작 별로 없었다.

“요즘 동네서점에 자주 들려요. 조용히 시집도 읽고. 소설쓰는 서아(책방 주인장)씨 하고도 코드가 맞아서, 여기오면 다른 데보다 편안한 느낌이 들어요.”

시인이 이 동네책방을 자주 찾는 이유다. 그녀에게 ‘우산’같은 곳. 이곳에서 조율 시인과의 2시간 가까이 이야기를 나눴다. 하지만, 그녀의 파란만장한 스토리에는 오프더레코드(보도 제외)가 자주 붙었다. 할 수 없었다. 두 번째 시집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조율 시인은 1983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늦은 나이에 입학한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했다. 대학 1학년때인 2007년에 <동백꽃 치마>로 윤동주시문학상 수상한다. 

“시 한편을 쓰기까지의 시간이 그렇게 오래 걸릴 줄은 몰랐고, 본격적으로 이제 내가 정말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라고 생각하고 이전 학창시절에 썼던 많지 않던 시에 대한 미련은 기억나지도 않을 만큼으로, 그 만큼의 시간과 공을 들여서 썼어요. 새로운 언어가 주는 애착에 마음을 많이 내려놓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던 것 같아요. 사실 그보다는 정말로 시를 써야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만 해도 시를 잘 쓰면 직장에 안 나가도 어느 정도 살아갈 것이라는 착각까지 들었으니까요.(웃음)”

당시 학생시절로 열심히 시 공부를 더 하고자 해서 2013년 한라일보 신춘문예에 도전했다. 시 <적도>가 당선돼 드디어 등단했다. 이번에 낸 시집 <우산은 오는데 비는 없고>는 제목부터가 인상적이다. 앞 뒤 단어를 바꾼 강렬한 도치법으로 위안과 위로가 필요했던 지난 과거 고통스러운 삶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시집을 낸 시인동네는 “상처로 점철된 단단하고 복잡한 미로를 빠져 나오기 위해, 우리는 다시금 시인의 데려온 슬픔을 따라가야만 한다. 조율 시인의 첫 시집은 그 슬픔이 얼마나 단단한 안간힘을 데려왔는지 알 수 있고, 그 안간힘이 ‘버티는’ 삶에 있어서 중심으로 번지기까지의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시를 쓰게 된 계기와 초심을 얘기한다면.

“시를 쓰려고 작심했던 건 어렸을 때부터였어요. ㄱ,ㄴ,ㄷ을 배우고 한글바로쓰기를 하고 동시부터 쓰기를 좋아했어요. 편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저는 동시가 좋아서 편지쓰기를 잊어버리고 살았어요. 그러다가 다시 시를 쓰고 싶어서 노트에다가 시를 끄적이며 시작했는데, 하루는 내가 실현하고자 하는 힘이 시 속에서만큼은 표현되는 것 같았어요. 감정적으로 조금 버거웠던 날이었는데, 그것에 대한 보상을 받는 느낌이 어느 정도는 있으려면 좀 오래 끄적이고 지우거나 줄을 긋고 공책을 너무 많이 찢어서 너덜너덜해지곤 했었어요. 책을 읽는 시간이 좋았고 쓰는 시간도 완성된 작품이 솔직히 스스로 좀 아주 좋다고 생각이 들면 백일장에서 작은 상을 받는 흐름이었던 같아요. 소설은 서사가 재미있긴 했지만, 머리가 아플 때가 있었어요. 시집을 읽었는데, 시에서 받는 느낌은 소설의 그만큼의 복잡하고 실제적인 시간적 서사에서 떨어져 있어도 되니깐 쓸 엄두가 났어요. 덜 복잡하고 좋았고 쓰는 시간도 그렇고 시를 읽는 시간도 좋았고요. 아버지의 오랜 부재에 많이 지쳐서 스트레스에 성격이 모나 있을 때쯤에 전화를 받으며 아빠의 부고를 알게 됐어요. 면접을 보고 월요일 출근을 앞두고 있었던 주말이었어요. 오래 떨어져 지냈던 아버지의 부재 상태임을 눈으로 확인하고 나서 시작된 직장생활은 버거웠어요. 다행히 또래 동료들이 많은 회사였어요. 보채는 아이 같은 마음을 알아보고 아플 정도로 많이 달래 주었던 것 같아요. 그만큼 그때 동료들이 학창시절 친구처럼 좋았어요. 학교에 다니는 것처럼 행복했던 시간이기도 했고, 그때의 사람 나도 그립지만, 미안한 마음도 여전하지만,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죠. 아직도 그 때를 떠올리면 소중한 인연과의 시간은 아주 선명하게 잘 간직되어요. 그 시간 속에 함께했던 마음이 아주 가까운 친구들. 서로 아픈 마음을 어설프게 달래 주다 보니 다시 아프고 아팠던 것 같아요. 좀 더 효율적인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시를 쓰게 된 것 같아요. 솔직히 미안하고 슬픈 마음으로 시작되었고 스스로의 문제를 감당하기 조차 버거울 만큼 괴로워서인지 지금 생각해보면 참 많은 사랑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죠. 제가 동시 이후에 처음으로 썼던 시는 기호로 물음표 라는 시였어요. 시 제목이 <?>인 시요. 조금 그렇긴 한데, 고등학교 시절 너무 과한 칭찬을 받아서 칭찬받는 것에 대한 진정성에 대해 좀 생각해 보긴 했던 것 같았지만 금세 잊어버리곤 했었어요. ”

▲힘든 직장생활이 시인이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고 들었다.

“네, 죄송하게도 제가 일을 진짜 못했어요. 그래도 잘해서 칭찬을 받는 순간도 있었어요. 그래서 많이 혼나고, 정말 힘들었어요. 그럴 때마다 회사 근처 서점에서 혼자 책을 읽으면 행복했어요. 장면이 선명하게 그려지며 기억되었어요. 아무도 없는 열차 차창 바깥에서 안으로 물들어가는 빛의 색, 그리고 문장들은 마치 창가의 토토의 시간을 갖던 내가 각각의 문장과 어절 사이에 이끌려 노크하는 느낌이었어요. 그 때 읽었던 소설은 무서움을 잊게 해주기도 한 나머지, 아무도 없는 길가에 인적이 없음을 확인하고 책을 들었어요. 그리고 책을 읽었어요. 여덟 시가 다 되어가며 캄캄해지려는데 그 엉뚱함을 저에게 언급하며 걱정하는 친구도 있었죠. 그렇지만, 저는 그것은 내가 아주 어렵게 되찾은 자유였어요. 직장과 사회에서 얻지 못하는 만족감이 책 읽고 시 쓰는 동안에 생겼어요. 직장을 그만뒀어요. 심적으로나 물적으로나 형편이 어려웠던 것들은 구멍 난 작은 자루에 무엇을 담는 것처럼 나아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어요. 당장 취업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죽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고 그 생각을 바꾸기 위해 작심하고 일년의 기간 동안 대학갈 준비를 했어요. 문예창작학과를 지원하게 됐죠. 그때 나이가 25살이었어요.”

▲ 시집 첫머리에 ‘과거의 당신은 피곤했다’고 적었다.

“제가 어려서부터 집안형편이 어려워 반가장역할을 했어요. 고등학교 나이때부터 일을 해서 생활비를 집에 보냈거든요. 껍데기는 여자인데, 살아가는 모습은 가끔 아저씨 같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어요. 그래서, 그런지 저의 과거의 감정의 상태에 존재하는 색깔은 어두웠어요. 어두운 것은 어떤 원인이든 간에 힘들고, 피곤하거든요. 이제 생각해보면 힘든 시간을 다시 겪고 싶지 않지만, 그런 시간들이 있었기에 그때의 삶들을 아름답게 다시 떠올리는 것이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힘들었지만 존재만큼은 유실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조율 시인은 대학 1학년이었던 2007년 「동백꽃 치마」로 그 해 <윤동주시문학상>을 수상해 문단의 이름을 알리게 됐다. 또래 아이들보다 5년이나 늦은 대학생활이었지만, 대학 4년동안 장학금을 놓지 않을 만큼 충실히 살았다. 

동백꽃 치마


빨랫줄에 널린 엄마의 치마를 걷어 와요
방문을 꼭 잠그고 나는 몰래 치마를 입죠
치맛자락에 둥둥 떠다니던 동백꽃이 토독 눈을 떠요
내가 입고 풀썩 앉아 널따란 동그라미 그리면
방바닥에 주름진 푸른 우물이 생겨나죠

우물 속에 고개를 숙이고 속눈썹을 담궈요
내 눈동자에 목젖을 감추고 있던 꽃망울이
엄마의 두레박 같은 웃음처럼 풍덩 피어나요
나는 빨간 동백 숲 가운데 천막을 치고 앉아
불그스레한 볼에 머뭇거리는 바람을 맞고요
깊은 우물 밑바닥에 꽁꽁 숨겨져 있던
엄마의 캄캄한 자궁을 상상하며 나는 익어가지요

나는 가장 붉은 동백꽃을 우물에 던지고는
시치미 떼며 엄마의 뱃속으로 다시 들어가요
그곳에는 내가 우물 밖으로 태어나지 않을 때
꽃을 던지며 긴 머리칼 날리는 엄마가 있죠
천막을 치고 앉아 젖어가며 나를 기다려요
낮잠을 주무시는 엄마는 이제 이끼가 가득한데요
나는 엄마 모르게 어른이 되지요


당시 심사위원들은 “동백꽃과 어머니, 우물을 연결시켜 한 주인공의 아름다운 짓과 태깔을 동시에 살려내어 한 존재가 어떻게 성숙해 가는지를 독특한 울림으로 그려 보이고 있다.”며 “한 생애가 나와 엄마로 이어지는 과정을 엄마의 ‘치마에 둥둥 떠다니는 동백꽃’ 눈뜬 그림을 통해 재미있고 재치 있게 그려져 있다. 아주 돋보이는 말 고르기로 시를 알차게 피워 올렸다. 훌륭한 시인이 될 것을 믿어 당선작으로 뽑았다.” 조율 시인의 미래를 확신했다.

졸업 이후 어린이 도서 편집을 하며 출판사에 근무했다. 이후 유명인 자선전과 강연용 책, 요리놀이, 에세이 등을 직접 집필하거나 대필하며 쉽지 않은 생활을 이어갔다. 그것마저 쉽지 않아 “강제로 시를 쓰게 됐다”며 웃었다. 그리고, 문학상 수상작과 등단작품, 각종 문예지 투고 시, 보관하고 있던 시를 모두 모아 시인동네에 투고해 첫 번째 시집이 나오게 됐다.

▲7년 전에 등단했다.

“소외되고 낡은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존재에 대해 제가 표현할 수 있는 것 중에 잘할 수 있는 것으로 확신을 느꼈던 것은 시밖에 없었어요. 예쁜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했었어요. 그것을 그리면 나와 다른 사람과의 소통을 적게나마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이 들어서요. 때로는 견디는 것이 힘들게 불편하게 살아가는 삶이지만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나가는 일은 그것이 눈으로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든 많이 중요한 일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원래 글보다는 그림에 대한 칭찬을 많이 들었어요, 그림을 그려줬을 때의 기분 좋아하는 표정을 보면 마음이 뿌듯해지는 순간이 좋긴 했지만 그 보다는 내가 만들어 낸 무언가를 갖고 싶다라는 마음이 더 컸던 것 같아요. 그렇다 보니 어떤 한계를 느꼈어요.”

▲시집 <우산은 오는데 비는 없고>은 제목부터 강렬하다.

“사실 일부러 도치법을 생각한 것 아니었어요. 할 일이 밀려 있는데 혼자 너무 생각이 많아진 날에 머리 속에 있던 말을 읊조린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 소리가 헛소리 같은데 자꾸만 떠올랐고 왠지 마음 아프지만 좋았어요. 예전에는 그렇지 않은 것 같은데, 비가 온다고 하면 우산을 챙기고, 심지어 비 예보가 없어도 준비하잖아요. 그런 시간이 행복하다가도 가끔 어떤 날들이 그리워지기도 하는 그런 순간에 생각났던 바깥으로 말이에요. 기록해두고 싶었어요. 그렇지만 행복하지 않는 허기의 시간, 결핍의 시간을 잊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과거의 힘들었던 사람이 내 자신일 수 있었고, 현재의 삶을 있게 한 소중한 순간들이잖아요. 그런 면에서의 고립에 대한 다양한 양태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고 싶었어요.”

▲시 <우산은 오는데 비는 없고>에 서랍이 나온다.

“보통 서랍을 열면 서랍에 있는 것들-문서, 도장, 사진, 금품 등이 들어있어요. 그런데, 그것이 꼭 사랑이라고 할 수 없음에 서랍 자체가 결핍이라고 할 수 있죠. 어떤 좋은 서랍에 좋은 것들이 있어도 그것은 결핍이에요. 살아감에 있어서, 중요한 것을 알려주는 게 가장 가까운 사람이에요. 가까운 사람이기도 하고 나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서로 결핍을 채워주는 그런 게 쉽지가 않기도 하고요. 다 중요하게 여기다 보니. 실제적인 사랑의 완성이 어려워요.”

▲시인이 말하는 ’우산과 비’는 어떤 의미인가.

“비옷입고 즐거운 나날을 보내는 사람들도 세상엔 많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요. 그것이 아름답고 즐거운 풍경이라면 나는 나는 그 안에 잠시 기대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많은 섭섭함이 생길 것 같아요. 왜냐하면 그 비옷을 입은 풍경을 실제로 보여준 사람은 엄마와 동생이었어요. 주일에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둘은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어요. 그 안에, 그 안에 결핍이 있기 때문이죠. 여기서 말하는 우산은 나를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이에요. 열악한 상황 속에서 비가 오는데, 공간놀이처럼 나의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방안에 우산을 펼쳐요. 밥상으로 본부를 만들고요. 그때의 감정이 커서도 나타나요. 나를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에 대한 갈증이 굉장히 많은 거죠. 그런데, 실질적으로 제약을 받죠. 사랑으로서 완전한 사랑이 사실적으로 힘든 것처럼. 재난의 시대에 바깥에 있어도 비에 젖지 않고, 내 공간을 확보하고 나 하나를 간수하기 위한 상징적인 의미가 우산이에요. 비는 낭만이었지만, 현실은 미세먼지(미스트)로 뿌연 세상이고 살아가기 쉽지 않죠. 낭만은 멀리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멀어져야 해요. 낭만이 아니에요. 현실이에요. 현실이라는 걸 강조하고 싶었어요.”

▲시 마지막 구절 ‘사람은 오는데 사랑은 없고’가 인상적이다.

“이 시의 화자는 자조적이고 의외로 염세적인 측면이 많을 것 같기도 한데, 그것이 바깥으로 드러나는 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저처럼 상처받은 영혼 같아요. 이 악물고 사는 것이 화사하고 잔잔한 호수같고 햇살이 내리쬐는 평화로운 것 같지만, 거기에 외로움이 조금은 깃들어 있어요. 대부분은 그것을 감추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죠. 친구가 ‘잘살고 있어, 행복해’라고 하지만 그 안에 힘들었던 일을 고백하는 것처럼,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하는 그런 부분을 담고 싶었어요.”

우산은 오는데 비는 없고

 

이를 테면 공동묘지 어떤 무덤이나, 오단 서랍장
세 번째 수납 칸 되어, 혹은 비켜간 채널 되어

 

이제껏 비가 왔던 모든 날들을 수납한다

 

욱여넣을 문갑 한 칸 찾을 수 없다
당분간 엄마가 아침 드라마를 괜히 끊는다
햇볕 찾아오는 어느 날 가사까지
지어올 리 없다

 

오늘을 오늘처럼 사는 처세술서
한 권쯤 갈아 마셔야 가늘게 산다
마르지 않은 수많은 어제들 말리느라
건조해져 어제조차 건너올 수 업다

 

우산은 오는데 비는 없고,
이제부터 당신은 모르는 사람
어제를 닮은 키 큰 플라타너스

 

마른 잎사귀를 한 걸음 밟는다
부스러기 섬들 다시 돋아나는데

 

펄펄 우는 폭우에 펼쳐질 나는
무지갯빛 우산, 아직 펑펑 젖은 무덤

 

우산은 오는데 비는 없고,
사람은 오는데 사랑은 없고

 

▲이 시집의 궁극적인 메시지는 뭔가.

“시집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을 해야 할 진 모르겠어요, 사람에겐 상처의 표면적인 것만 보면 미학적인 부분이 굉장히 많다고 생각해요. 사실 조금 촌스러울 수도 있고, 어떻게 보면 세련될 수 있고. 친한 가족과의 관계에서는 가까우면 치부를 알게 되고 닮아가고. 그런 점에서 내가 태어나서 생과 사를 살아가는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에서 외면하지 않았나. 그런 감정과 어울리는 그림을 저는 시에서 드러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다고 대놓고 드러내고자 하는 건 아니에요. 이게 애매해요. 나의 감정이기도 하고 또 아니기도 하고. 그런데 닮아있는 그 모습에 추방당하거나 소외감 속에서 병들어갔던 영혼들이 소속감을 느끼는 그런 단순함에 대해 표현하고 싶었어요.”

▲자신만의 시 쓰는 방식이 있나.

“저도 시 쓰는 시간에 집중하는 편이에요. 우리말 사전이나 심리관련 책, 판례집, 르포나 다큐멘터리 등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보는 편입니다. 특히, 음악을 듣고 제 감정을 키우고 찾으려고 노력해요. 실제로 있었던 일과 공통적인 감정 같은 거요.”

▲첫 번째 시집에 대한 평가와 반응은 어떤가.

“아직은 반응이라고 얘기하기가 좀 어려워요. 시집 나온 지 얼마 안되기도 했고요. 책을 좋아하지만 제가 열심히 하는 것을 좋아하던 엄마인데 시를 읽으면서 어떻게 생각할까 생각을 해보기도 했지만, 이해해주시고 격려해주셔서 고마웠어요. ” 

▲독자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아,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할 지 어려운 말들이 가 닿기 어렵기도 하고요. '사랑합니다, 부족하지만 덕분에 늘 사랑 받으며 살아가요'라고 말하고 싶어요. ”

/글ㆍ사진 이윤도 기자 dailypoem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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