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정영희의 산문노트]오이디푸스, 헤라의 저주
[소설가 정영희의 산문노트]오이디푸스, 헤라의 저주
  • 정영희
  • 승인 2019.05.12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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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 서울은 종일 는개에 젖어 있었다. 오랜만에 아들과 연극을 보러 갔다.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 오이디푸스. 아들과 보기에는 퍽적절하지는 않은 연극이긴 했다. 다소 지루한 감이 있었지만, 배우 황정민의 뜨거운 열정에는 할 말이 없을 지경이었다.

신화는 메타포다. 그럼 오이디푸스(Oedipus)는 우리에게 어떤 메타포를 전하는 것일까.

오이디푸스는 테베의 왕이다. 테베왕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아비를 죽이고 어미와 결혼할거라는 신탁 때문에 산속에 버려진다. 오이디푸스란 ‘부은 발’이란 뜻이다. 버려질 때 발뒤꿈치에 구멍을 뚫었다고 한다. 하지만 양치기에 의해 살아나고, 이웃나라(코린토스) 왕자로 성장한다. 청년이 된 오이디푸스는 우연히 델포이 신전에서 자신의 운명을 물어 본다. ‘아비를 죽이고 어미를 아내로 맞이할 것이다.’ 라는 신탁을 듣고, 신탁을 피하기 위해 코린토스에서 멀리 달아난다. 달아나던 도중에 삼거리 산길에서 만난 남자(라이오스)를 죽이게 되고, 테베의 성문 앞에서 남자들만 목 졸라 죽이는 괴물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어 테베의 왕이 된다.

결국 오이디푸스는 신탁의 예언대로 아버지(테베의 왕, 라이오스)를 죽이고 테베의 왕위에 올라 어머니(테베의 왕비, 이오카스테)와 결혼해 아이를 넷이나 낳는다. 저주받은 운명의 남자다. 이 모든 진실을 말해준 예언자는 장님인 테이레시아스이다.

프로이트에 의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어원이 된 남자이기고 하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란 유아기의 아들이 이성의 부모에게 성적애착을 느끼고, 동성의 부모에게 경쟁의식을 느끼는 복합감정을 말한다. 이런 콤플렉스가 해결되지 않은 남자는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은 욕구가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이런 욕구를 실제로 드러낸 자가 신화 속의 오이디푸스라는 것이다. 신화란 실제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상징이다. 유아기를 지나 어린이가 되면 아들은 동성친구나 외부세계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아버지와 동일시’함으로써 그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남자로 성장하게 된다고 프로이트는 주장했다. ‘동일시’란 심리학용어로 다른 사람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타협함으로써 자아의 인격을 형성해가는 과정을 말한다.

오이디푸스의 어머니이자 아내인 이오카스테는 목을 매 죽고, 오이디푸스는 두 눈을 찔러 스스로 장님이 된 채 운명의 땅인 아티카의 콜로노스까지 가서 죽음을 맞을 때까지 테베를 떠나 온 헬라스의 땅을 방랑한다. 그는 그리스 신화 중 가장 비극적인 인물일 것이다.

이 엄청난 비극의 신화를 나는 언제 읽었든가. 오래 전 ‘신화 읽기’의 붐을 일으킨 이윤기(소설가, 번역가 1947~2010) 선생의 저서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전 3권)’ 에서다. 신화는 처음 구약성경을 읽었을 때처럼 무섭고 두려웠다. 온 몸의 세포가 쌀알처럼 곤두서서 밤을 하얗게 새우곤 했다. 신들은 난잡했고, 교만한 인간에 대해 가차없이 잔인했으며, 질투가 심했고, 한 번 내린 저주는 거둘 수 없다는 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북풍의 신과 님프 사이에서 태어난 하이모스는 로도페와 결혼한다. 하이모스와 로도페는 삶이 너무 행복한 나머지 서로를 제우스와 헤라라고 칭하는 우를 범한다. 결국 이들은 신들의 분노를 사게 되어 산으로 변한다. 오늘날 불가리아에 있는 로도페 산과 하이모스 산이 이들이다.

베짜는 여인 아라크네는 직물의 수호신인 아테나 여신에 못지 않는다고 자만하다, 여신의 분노를 사 영원히 베를 짜는 거미로 변하게 된다.

7명의 아들과 7명의 딸을 둔 니오베는 교만하여, 쌍둥이 남매를 둔 레토여신을 업신여긴다. 레토는 제우스의 여인이었는데 본처 헤라의 저주를 받아 지상에서는 몸을 풀 곳이 없었다. 그러나 델로스 섬이 불쌍히 여겨 겨우 아폴론과 아르테미스를 낳을 수 있었다. 니오베는 그런 과거까지 들추며 레토여신을 능멸했다. 이에 화가 난 레토여신은 궁술의 신이자 사냥의 여신이기도 한 쌍둥이 남매에게 니오베의 자식 14명을 활로 쏴 모두 죽이게 한다. 니오베는 눈물을 흘리는 돌로 변한다.

신과 겨루는 일은 인간에게 허용된 일이 아니었다.

신들의 제왕 제우스는 여신 혹은 여인을 가리지 않는 엄청난 바람둥이고, 그의 아내 헤라는 질투가 여신들 중에 으뜸이다. 헤라가 잠시 한눈을 팔기만 해도 자유자재로 모습을 바꿔가며 바람을 피우는 제우스 때문에 헤라는 질투의 화신이 된다. 헤라는 가정을 지키기 위해 제우스와 정분이 난 상대 여인들과 자식들을 해코지 했다. 헤라는 가정과 결혼과 출산의 수호신이다. 하여 가정을 깨고 아내 이외 여자 혹은 남자에게 사랑을 느끼거나 불륜을 저지르는 자에게는 반드시 벌을 내리는 신인 것이다.

그러나 여신 아프로디테(비너스)만은 예외였다. 절름발이 대장장이 남편 헤파이스토스를 두고 전쟁의 신 아레스와 바람을 피워 여러 명의 아이를 두고, 헤르메스와 디오니소스와의 사이에도 아이를 두고, 인간인 아도니스와도 비극적인 사랑을 한다. 질투심에 눈이 먼 전쟁의 신 아레스가 멧돼지로 변해 아도니스를 죽인다. 아도니스가 죽은 자리에 붉은 아네모네 꽃이 피었다고 한다. 다 불륜이다. 그런데 헤라는 왜 아프로디테를 저주하지 않았을까. 정숙한 헤라는 어쩌면 아무런 죄의식 없이 오로지 순수한 사랑만 하는 애욕(愛慾)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부러워했을 지도 모른다. 아님, 뭇 신과 인간에게서 수많은 자식을 두는 미와 사랑과 출산의 여신인 아프로디테가 헤라의 권능을 감복시켰는지 모른다.

신화에 대한 갈증으로 ‘신화’라는 제목만 들어가도 당장 책을 사 보곤 했다. 그래도 늘 오이디푸스의 엄청난 신탁 앞에서는 가슴이 먹먹했다. 오이디푸스의 신탁은 너무나 강렬하고 잔인하고 종내는 비극으로 끝이 난다. 오이디푸스는 정녕 자신의 운명을 뛰어 넘을 방법은 없었단 말인가. 이 신화는 도대체 우리에게 어떤 메타포를 던진단 말인가.

장님인 테이레시아스는 오이디푸스가 자신을 알게 하는 역할을 한다. 테이레시아스는 ‘조짐을 읽는 자’란 뜻이다. 테이레시아스는 나르시스를 보는 순간 ‘저 자신의 모습만 보지 않으면 오래 살 아이’라고 말한 아테나의 예언자다.

두 눈을 찔러 장님이 된 후에야 오이디푸스는 비로소 자신의 내면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장님이 되어 광야를 헤매며 자기 안에 도사린 욕망과 맞닥뜨린다. 왕위와 가족을 모두 잃고 지팡이 하나만 남은 떠돌이가 되면서 그는 성숙된 영혼으로 거듭난다. 모든 걸 내려놓았을 때 비로소 자기 자신의 진실과 직면할 수 있고,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순간, 그는 그 모든 걸 뛰어 넘을 수 있었다.

요즘으로 말하자면 눈에 보이는 모든 부와 권력과 학벌과 미모가 다 부질없고 덧없는 것이라는 걸 깨닫는다. 한없는 고통을 겪었지만 고통을 겪은 만큼 성숙되었고, 성숙해진 만큼 마침내 그의 영혼은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그는 에리니에스 여신들의 사당에서 죄를 씻고 죽음을 맞이한다. 에리니에스는 육친간의 범죄, 특히 존속살인을 엄격하게 추급하는 복수의 여신이다.

그렇다면 오이디푸스는 왜 그런 신탁을 받게 되었을까. 무엇이 그리 신들의 분노를 샀단 말인가. 테베 왕가의 저주는 아버지 라이오스 왕으로부터 비롯된다. 라이오스는 한 살 때 아버지가 죽고 외가의 섭정에 들어갔다. 그러나 외척의 쌍둥이 형제가 테베의 왕권을 차지하자 피사의 왕 필롭스에게로 의탁한다. 필롭스는 라이오스를 극진히 보살핀다. 그러나 라이오스는 쌍둥이 형제가 죽고 테베의 왕으로 돌아갈 때 필롭스와 님프 사이에서 난 아들 크리시포스를 전차 모는 방법을 가르쳐준다며 유괴하다시피 데려간다. 크리시포스는 제우스도 반한 아름다운 청년이다. 데려가서는 그를 강간한다. 미소년 크리시포스는 수치심으로 목매어 자살한다.

이를 지켜보던 가정의 수호신 헤라가 저주를 내린다. ‘아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아내는 아들과 결혼할 것이다.’ 헤라는 괴물 스핑크스도 내려 보낸다. 스핑크스는 ‘목 졸라 죽이는 자’란 뜻이다. 라이오스가 저지른 ‘미소년 유괴 강간죄’는 대대손손 헤라의 저주를 받게 된다.

아, 불쌍한 오이디푸스. 결국 아비의 죄로 저주를 받았던 것이다.

결국, 오이디푸스의 신화는 우리에게 신(神)이 싫어하는 불손한 짓들을 하지 말고, 착하게 잘 살아야한다는 메타포를 던지는 것이다. 잘되면 제 탓, 못되면 조상 탓이란 속담이 영 엉터리는 아닌 것 같다. 그러나 헤라의 저주로 오이디푸스의 영혼은 ‘오래된 영혼’으로 거듭났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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