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정영희의 산문노트]아들의 연인
[소설가 정영희의 산문노트]아들의 연인
  • 정영희
  • 승인 2019.05.12 18: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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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라노사우르스와 벨로시랩터와 안킬로사우르스를 사랑하고, 세상의 모든 차란 차는 다 사랑하고, 그 중에서도 슈퍼카 F1을 미친듯이 사랑하던 아이는 자라 청년이 되었다.(아들의 얘기를 한 번은 쓰고 싶어서 쓴다. 용서하시라.) 공룡모형과 미니 장난감 자동차는 거짓말 조금 보태 한 가마니씩은 되었다. 어느 날 아들이 없을 때 몰래 반 쯤 내다버리려다가 엘리베이터 앞에서 딱 걸렸다. 6살 아들은 눈물을 글썽거리며 왜 자신의 장난감을 허락도 없이 버리려하느냐고 했다. 몹시 상처받았는지 한 동안 말이 없었다.

그 뒤로 아들의 물건은 손대지 않는다. 나를 닮은 걸 대번에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나는 쓸데없이 나의 손때와 추억이 깃든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나도 외딸로 자랐고 아들은 나보다 더한 무녀독남이다. 그렇게 사랑을 많이 주고 키운 것 같은데도 홀로 장난감을 가지고 놀 때 보면 외로워 보였다.

배 속에 있을 때부터 클래식 음악만 들었고, 태어나서는 잠잘 때도 놀 때도 클래식 음악을 들려주었다. 늘 차이콥스키나 모차르트나 베토벤이나 바흐나 리스트의 음악을 들으며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다. 공룡을 만들거나 레고로 차를 만들 때는 매우 골똘해서 불러도 돌아보지 않았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피아노 학원을 다녔다. 어느 날 차이콥스키의 ‘백조의 호수’ 한 소절을 쳤다. 깜짝 놀라 벌써 이걸 배웠냐고 물으니, 그냥 매일 엄마가 들려줘서 한번 쳐본 거라고 했다. 청음이 뚫렸구나 싶었지만 모르는 척 했다. 할아버지가 의사긴 했지만 그 당시 아이 아비는 월급쟁이였다. 강남에 산다고 음악을 시킬 만큼 다 경제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아니나 다를까 초등학교 3학년 땐가 4학년 땐가 피아노학원 원장이 불렀다. 아들을 음악을 시키라는 것이다. 나는 그럴만한 여력이 안 된다고 했다. 그 뒤 피아노 학원을 보내지 않았다.

그러나 아들은 예술적 재능이 많은 아이였다. 고등학교 들어가자 미술학원을 보내달라고 했다. 서울대 나온 학원 원장은 아들을 자신의 양아들처럼 생각할 정도로 그림 실력이 뛰어났다. 그러나 삼수 끝에 대학엘 들어갔다. 강남에서 미술대학을 들어가기 위해 삼수를 한다는 건 수억이 든다는 말과 같다. 스웨덴 볼보 회사에서 공모한 광고디자인에 입상하기도 하고, 디자인 잡지 표지에 네 번이나 실리기도하고, 레드닷 어워드(reddot award) 그래픽 부문에서 세계1등을 해서, 구글과 픽사의 초청으로 샌프란시스코에 가서 워크숍도 하고 전시도 했다.

70여년 만에 폭설이 내렸다고 난리를 치던 해, 아들은 군 훈련병이었다. 하루 종일 연병장을 쓸었다고 한다. 쓸어도 쓸어도 눈이 내려, 한 순간 시지프스의 형벌이 생각났다고 했다. 무사히 제대해서 복학했고, 대학을 졸업하고 디자인 회사에 들어갔다. 그러나 디자인과는 거리가 먼 잔심부름만 시키고 월급은 열정 페이 수준이었다. 유학을 가거나 대학원에 갈 상황이 아니었다. 삼수를 할 때 아비는 부도가 났다. 누군가 부도가 난다는 건 이미 주위 피붙이들의 돈이 그 속에 왕창 들어갔다고 보면 된다. 더 이상 손을 벌릴 염치가 없었고 아들은 학자금 대출을 받아 등록금을 냈고, 다니던 미술학원에 강사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교를 다녔다.

우리나라는 디자이너를 우습게 보는 나라다. 디자이너를 우습게 보는 나라는 후진국이다. 어쩌면 3류 표절 국가로 전락할 지도 모른다. 디자이너뿐이겠는가. 모든 예술가를 돈으로 환산해서 줄을 세우는 나라다. 아무튼, 아들은 이제 다른 일을 한다. 이 나라에서는 더러워서 디자인 안 한다고 했다. 명리학으로 본 아들의 운명은 30대 후반부터 대운이 들어온다. 내년이면 이제 아들은 30대 중반을 넘어 후반으로 들어선다.

디자인 회사에 다닐 때 3년 쯤 여자 친구가 있었다. 우연히 아들이 노래를 엄청 잘한다는 걸 알았다. 디자인을 전공했지만 여전히 음악을 좋아해 주변에 음악 하는 친구나 가수들이 많았다. 음악 하는 친구가 소개시켜준 아가씨는 연극배우였다. 착하고 예쁜 아가씨였다. 여형제도 없고 딸도 없는 나는 엄청 정을 주었다. 그러나 그들은 헤어졌다. 이유는 물을 수 없었다. 아들이 너무 아파하는 게 보여 같이 말없이 참아야만 했다.

아들만 생각하면 눈앞이 붉어진다. 사촌동생들이 모두 결혼을 해서 아이가 둘씩 되었다. 사촌 중에 가장 맏형인 아들은 결혼할 생각을 안 한다. 여자도 만나지 않는다. 또한 싱글이 하면 안 되는 짓은 다 한다. 애완견을 키우지 말고, 캠핑을 하지마라. 둘 다 한다. 강아지는 두 마리나 키우고 한참 골프연습을 하더니 이젠 캠핑을 다닌다. 키 180센티에 90키로. 어릴 때부터 별명이 ‘베어’였다. 주말이면 20키로가 넘는 배낭을 메고 전쟁터라도 나가듯 집을 나선다. 수컷들은 다시 군대를 보내든지 전쟁이 나든지 해야지, 저 짓을 안 하겠구나 싶다. 참으로 이상한 거는 아들의 아비가 주말마다 배낭을 지고 백두대간을 걷는다고 나갈 때는 천하에 제일 보기 싫은 사람이 그 아비였다. 그러나 아들이 배낭을 지고 나가는 모습은 어쩜 그리 멋있는지.

아들의 아비는 ‘성배’를 찾아 오지로 떠나는 ‘인디아나 존스’ 스타일이다. 물론 외환위기가 닥치지 않았으면 퇴직할 때까지 그냥 회사를 다녔을 지도 모른다. 아들이 막 중학교에 들어갔을 때다. 그 때 회사를 그만두고 중국으로 떠나 3년 만에 돌아왔다. 그 후 중국으로 흘러 들어간 돈은 말해 무엇하겠는가.

16년 전 북경을 갔을 때 눈물이 터진 적이 있다. 해거름이었고 나는 택시를 타고 있었고 언덕 아래로 거대 도시 북경의 마찬루들이 보였다. 차가 조금 밀렸는데 바로 눈앞의 나무 아래 한 남자가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낡은 자전거를 옆에 세워두고 그 마천루들을 바라보며 처연히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 남자의 작은 등은 ‘절대 고독’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했다. 저 남자도 저 도시의 욕망의 파도에서 밀려났구나 싶었다. 중국은 거대한 늪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걸 다 빨아들이고도 시침을 뚝 떼는 늪 말이다. 그렇게 아들의 아비는 중국에 ‘대패’했다.

- 여자친구나 좀 만나라.

배낭을 지고 나서는 아들에게 기어이 한 마디 하고 만다.

- 돈 먼저 벌고요. 걱정 마세요. 만날 때 되면 만나겠죠.

하기야 아들은 돈만 벌면 된다. 요리 잘 하고 설거지 잘하고 세심하고 자상하다. 그러나 요즘 세상에 돈 없는 남자에게 시집올 여자는 없다. 세상의 모든 여자는 ‘신데렐라 콤플렉스’가 있고, 세상의 모든 남자는 ‘금홍이 콤플렉스’가 있다. 신데렐라 콤플렉스는 다 알다시피 왕자를 만나는 것이다. 금홍이 콤플렉스는 금홍이를 만나는 것이다. 금홍이는 ‘이상’의 운명의 여인이다. 금홍이는 다방과 술집을 하며 생계를 책임지고 ‘이상’은 그 당시로서는 난해한 시와 소설을 썼다. 남자 입장에서 보면 금홍이 같은 여자를 만나는 게 ‘삼성전자’ 들어가는 것 보다 낫다. 그러니 세상에는 결혼하지 않는 처녀 총각이 넘쳐나는 것이다. 사랑이 ‘미신’이라는 걸 그들은 일찌감치 알아차린 것이다.

오랜 지인인 일본여자가 있다. 엄격히 말하면 제일교포지만 한국 남자와 결혼해서 한국에서 산다. 그녀는 딸이 두 명 있다. 큰 딸은 일본에 있고 둘째는 한국에 있다. 큰 딸이 마흔이 다 되었고 둘째는 세 살 어리다. 그런데 딸 둘 다 결혼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자신의 일을 더 사랑한다고 했다. 웬만한 남자는 눈에 차지 않는다는 것이다.

- 마, 영희씨 우리나 즐겁게 살다 죽읍시다. 저들이야 결혼을 하든 말든...

점점 남자들이 힘든 세상이 되는 것 같다. 돈 없고 능력 없으면 결혼도 할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아들 가진 엄마 입장에서 그렇게 느껴진다.) 현모양처라거나 희생적인 모성애는 점점 희박해지는 것 같다. 누구도 희생하려 들지 않는다.

요즘 남자는 능력도 있어야 하고, 돈도 있어야 하고, 페미니스트여야 하고, 부성애가 강해야 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흑기사여야 하고, 사나이다워야 하고, 부모가 못 살아도 안 되고 너무 오래 살아도 안 되고, 너무 효자여도 안 되고, 못사는 형제와 우애가 깊어도 안 되고, 골프나 낚시나 등산이나 캠핑에 미쳐도 안 되고, 술이나 도박이나 여자(혹은 남자)에게 미치는 건 절대 안 되고, 아파도 슬퍼도 외로워도 눈물을 보여서는 안 된다. 야성이 있어도 안 되고 없어도 안 된다. 야성이 없으면 '루저'같다 하고, 야성이 있으면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한다. 슈퍼맨만이 살아남는 세상이 되었다.(페미니스트들이 엄청 날 미워할 거 같은 예감이 든다. 사회구조적인 문제는 매스컴에서 이미 다루었다.)

아들들의 고난시대다. 고난은 석복수행(惜福修行)을 하는 시기다. 석복수행은 복을 아끼는 수행이 아니라 ‘복을 저금하는 수행’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느 순간 물 항아리에 물이 가득 차듯 저금한 복이 가득 차기를 바란다. 아, 그때 쯤 아들의 연인이 운명처럼 나타나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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